주로 가격담합 여부를 따지는 이 조사에서 적발된 업체들에는 천문학적인 벌금이 부과되고 관련 임직원들에게는 실형이 선고되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업체들에는 미 법무부의 가격담합 조사가 공포 그 자체다.
2003년 D램 가격담합 건으로 삼성전자 하이닉스반도체 인피니언 등이 한 차례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는 데다 지난해부터 S램 가격담합 건으로 조사를 받고 있어 심리적 압박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최근 미국 법무부가 D램·S램에 이어 플래시메모리 업체들의 가격담합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자 관련업체들이 일제히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조사결과에 따른 제재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가 이번 조사과정에서 미국 법무부에 담합행위를 자진 신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미 법무부에 담합행위를 시인하고 조사에 적극 협조할 뜻을 전달한 것은 '엠네스티'(사면) 제도를 적극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D램 가격담합 사건 때처럼 미 법무부의 조사내용에 따라 자칫 막대한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선제적 방어'에 나선 셈"이라고 설명했다.
미 법무부 조사에서 가격담합 사실이 드러날 경우 해당 업체는 크게 3단계의 제재를 받게 된다.
1단계로 회사(법인)에 대한 벌금이 부과되고,2단계로 담합에 관여한 해당업체 임직원에게 실형이 선고되며,3단계로 소비자들의 민사소송에 따른 합의금을 물어야 한다.
'엠네스티'는 이 같은 가격담합에 대한 제재를 피할 수 있는 제도다.
담합 행위에 가담한 업체가 자진 신고할 경우 벌금과 형사상의 제재를 면해주는 조치로 국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도입하고 있는 '리니언시(leniency:자진신고자 감면제도)'와 비슷한 제도다.
실제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미 법무부가 조사한 D램 가격담합 사건에서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이 제도를 이용해 제재를 피했다.
마이크론이 자진신고를 통해 단 한 푼의 벌금도 물지 않은 반면 삼성전자는 D램 가격담합 혐의로 2005년 10월 3억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은 데 이어 임직원 6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또 올해 2월에는 미국 41개 주정부가 소비자들을 대신해 제기한 민사소송 합의금으로 9000만달러를 손해배상 명목으로 지불해야 했다.
하이닉스와 인피니언도 각각 1억8500만달러,1억60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받고 일부 임직원이 징역형을 선고받았었다.
업계 관계자는 "2004년 당시 삼성전자가 플래시메모리 시장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었다는 점도 이번 자진신고의 배경이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담합행위가 적발될 경우 미 법무부는 관련업체들의 매출액에 따라 벌금을 매기는데,삼성전자가 담합행위를 했을 경우 벌금액수가 천문학적 수준일 것이란 점에서 조사에 적극 협조키로 했다는 설명이다.
한편 삼성전자는 '플래시메모리 가격담합 건을 자진신고했는지'여부에 대해 "미 법무부가 이제 막 조사에 착수한 단계이기 때문에 조사에 최대한 협조한다는 게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