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11시 반포동 기획예산처 본청 4층. 내년도 예산안 브리핑을 마치고 기사송고실을 빠져나가는 기획처 관료들의 표정은 무척 지쳐 보였다.

한 관계자는 "어떻게 예산안을 작성해서 브리핑까지 마칠 수 있었는 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다"며 "매년 반복되는 행사지만 올해만큼 힘든 적은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예산편성에 필요한 시간이 이런저런 이유로 대폭 줄어든 데다, 전임 장관이 관련된 신정아 사건, 이른바 '취재선진화 방안'으로 오락가락한 브리핑 일정까지 한 번도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올해는 국가재정법이 시행되면서 정부 각 부처가 기획처에 예산안을 요구하는 시기가 5월 말에서 6월 말로 한 달 늦춰졌다. 반면 예산안 발표 시점은 남북정상회담 일정과 추석 연휴 때문에 보름여 앞당겨졌다. 예년 같으면 4개월 넘게 걸리던 예산작성 기간이 80일로 줄었으니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획처 관료들은 "물리적 시간의 부족보다 심리적 부담이 더 컸다"고 입을 모았다. 예산안을 짜는 동안 한 때 조직의 수장이었던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 사건이 터지면서 국민들로부터 "너희들도?"라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겨우 예산안 작성을 마쳐갈 무렵, 이번엔 국정홍보처가 제동을 걸었다. 국정홍보처가 취재선진화 방안을 강행하면서 출입기자단이 예산안 브리핑 취재를 거부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 홍보처는 기획처 청사 브리핑실에서는 절대 브리핑을 해서는 안 된다며 브리핑 장소를 과천 통합브리핑룸으로 옮길 것을 강요했고, 이에 대해 출입기자단이 취재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통합브리핑제도에 반대해 브리핑을 거부해버린 것이다.

기획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브리핑 하루 전 장병완 장관이 홍보처를 설득해 반포동 청사에서 브리핑하는 것으로 간신히 사태를 봉합했다.

한 관계자는 "홍보처가 그렇게 세게 나올 필요가 없었는데…"라며 "아무튼 이번 예산안은 발표 직전까지 한시도 맘을 놓을 수 없는 사건의 연속이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박수진 경제부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