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말 정권의 '대못박기'가 한창이다. 지난주 제주도 서귀포에 이어 어제 경북 김천에 혁신도시라는 이름의 대못이 박혔다. 서귀포는 토지보상비와 공사비를 합쳐 3465억원, 김천은 무려 9325억원짜리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서두른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설명한 그대로다. 노 대통령은 서귀포 혁신도시 기공식에서 "임기 안에 첫 삽을 뜨고 말뚝을 박고 대못을 박아놓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추구한 정책은 옳은데 여론이 반대하고 다음 정권에서 뒤집힐 것 같아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일단 저질러 굳히고 보자. 그러면 나중에 어쩌겠는가'하는 식이다.

그런데 일은 제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으니 기공식이라도 먼저 하는 곳은 300억원, 그 다음은 100억원이라는 '현상금'까지 내걸었다. 그 못 말릴 오기와 독선, 집착에 질리는 정도를 넘어, 오죽 강박관념에 내몰렸으면 이럴까 싶다.

어떤 정책이든 타당성과 합리성이 있고 국민의 공감을 얻는다면 다음 정권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게 당연지사다. 노 대통령이 곳곳에 대못박기를 하고 있는 것은 자신은 옳다고 믿지만 그 연속성에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민주국가에서 이런 엉터리 같은 경우가 또 있을까. 도무지 정상적인 국가경영이라고 볼 수도 없다.

솔직히 공공기관 몇 개를 옮겨서 어떻게 '혁신'을 이루겠다는 건지조차 알기 어렵다. 정권이 추구하고 있는 균형발전정책은 한마디로 '모든 것이 집중된 수도권을 억제하고 정부기관과 기업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것'이다. 그럴 듯 하지만 이 논리의 치명적인 결함은 '수도권을 비워 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지방토지의 불로소득을 만드는 것'이 균형발전의 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도권 기관의 지방 이전에 따른 공공서비스 공급과 수요처의 불일치가 가져올 낭비와 비효율, 그것으로 인해 가중될 국민들의 불편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분명한 것은 한 나라의 경제가 발전될수록, 산업구조가 고도화될수록 인구가 어디로 이동하고 도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역사적 경험은 소수의 대도시로 인구와 경제활동이 집중되는 과정이었고 어느 나라에서나 '균형발전론'은 실현불능의 이상(理想)에 그치고 말았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수도권억제 정책이 지방의 성장으로 이어진 사례는 거의 없다"고 진작 결론내렸다.

하물며 자동차로 길을 달리면 반나절 안에 동서남북 땅끝에 도착하는 좁은 나라다. 그린벨트다, 상수원 보호다, 수도권 공장 신·증설제한이다…그 촘촘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지난 30여년 동안 우리 수도권의 인구는 배(倍) 이상 늘고, 기업은 지방이 아니라 중국 동남아로 나갔다. 경제의 국경마저 사라진 글로벌 시대에 수도권의 집적화와 광역화를 국가경쟁력 향상의 기본으로 삼아도 시원찮을 판에 몇 조원씩 쏟아부어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발상 자체가 이만저만한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임기 말 정권이 또 어디에 얼마나 돈을 들여 대못을 박을지 모른다. 못을 박는 것은 쉽지만, 자리를 잘못잡은 못은 뽑아내야 하고 그 일은 더 힘이 든다. 못을 뽑은 자리에 남는 흉한 흔적은 또 어쩔 건가. 결국 애물단지로 남게 되면 그 뒤치다꺼리에 등골 휘면서 세금 내야 하는 국민들은 도대체 무슨 죄란 말인가.

추창근 논설위원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