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출범 초 공정거래위원회가 압수·수색이 가능한 '강제조사권'을 가지려 하자 법무부가 반대해 결국 무산시켰다.

지난해엔 공정위가 경제부처들과의 공조작전을 통해 법무부가 반대하던 동의명령제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최종 합의문에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1승 1패'씩 주고 받았다.

'결승전'을 하려는 것일까.

최근 공정위와 법무부가 또 다시 맞붙었다.

이번엔 전속고발권(용어설명)을 둘러싸고서다.

법무부는 동의명령제를 도입하려면 전속고발권을 내놓으라고 공정위를 압박하고 있다.

그 와중에 검찰은 이례적으로 공정위를 전격 압수수색까지 했다.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리니언시 프로그램)'를 통해 한 번 덮은 사안을 다시 파헤치고 있다.

고발권을 틀어쥐고서 솜방망이 처벌을 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두 기관의 다툼은 결국 '칼끝'이 기업을 겨누고 있다는 점에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까' 기업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왜 싸우나

전문가들은 '사법권'에 대한 두 기관의 근본적인 시각 차이가 대립을 불렀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우선 공정위가 자꾸 권한을 확대하려는 것이 불만이다.

과거 강제조사권을 무산시킨 배경도 그렇다.

행정기관에 불과한 공정위가 압수·수색이라는 검찰의 고유 권한을 침범하려 한다는 얘기다.

주어진 권한 내에서 조사하고 강제력이 필요하면 검찰에 넘기면 된다는 게 법무부와 검찰의 생각이다.

한·미 FTA 합의 사항인 동의명령제에 대해서도 '검찰 통제'를 가미하는 방향으로 절차를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공정위가 의결 전에 검찰의 판단을 받으라는 게 골자다.

기소를 통해 형사처벌이 가능한 사안은 검찰에 넘기고 그렇지 않은 것만 동의명령제를 활용하라는 주장이다.

반면 공정위는 경제에 파급효과가 큰 공정거래법 관련 사건은 전문성 있는 기관에 일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정명령으로 끝낼지,과징금을 매길지,고발을 통해 사법처리를 할지를 모두 판단하겠다는 얘기다.

법무부 주장대로라면 동의명령제의 본질이 훼손된다는 게 공정위의 시각이다.

잘못하면 기소될지 모르는데 어떤 기업이 동의명령안을 자진해서 내놓겠느냐는 것이다.

◆불안한 기업들

공정위의 '준사법권'을 자꾸만 박탈하려는 법무부의 시도는 기본적으로 '공정위가 봐주기식 제재를 하고 있다'는 견해가 깔려 있다.

하지만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건수가 매년 급증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시각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공정위는 2003년 단 37건의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올 들어서는 과징금 부과건수가 8월 말까지만 무려 264건에 이른다.

과징금 액수도 최근 3년간 2000억원 안팎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보기엔 공정위의 제재 수준이 만만치 않다.

A기업은 최근 간부회의에서 경영회의 대신 공정거래법 교육을 실시했다.

전직 공정위 직원을 불러다가 관련법과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정거래 위반 사례도 알려줬다.

공정위의 민간 교류 휴직 제도를 활용해 현직 공정위 직원을 데려다가 자문을 받는 기업도 급증하고 있다.

'공정위 리스크'가 기업의 부담이 된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런데도 법무부와 검찰은 완전히 정반대의 시각에서 공정위와 권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최근 권오승 공정위원장이 "검찰 입장을 이해한다"며 한 발 물러서자 기업들의 걱정은 더 커졌다.

B기업 대관(對官) 업무 담당 부장은 "공정위의 권한을 검찰이 상당 부분 행사하면 모든 사건이 형사처벌 일변도로 흐르지나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하나의 제도를 두 기관이 관장하는 데서 비롯될 부작용에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

[ 용어풀이 ]

◆동의명령제=담합을 제외한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대해 기업이 자진시정과 소비자 피해 회복 방안을 내놓고 공정위가 이를 받아들이면 그것으로 모든 사건을 종결시키는 제도.

기업의 조사 및 제재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지만 검찰의 기소권을 침해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속고발권=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 검찰이 기소하려면 공정위의 고발이 먼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검찰은 공정위에 고발 요청이 가능해 일정 부분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