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이 물러나면서 그가 강력히 추진하던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 정책이 줄줄이 보류되는 양상이다.

신임 정성진 장관은 지난 12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김 전 장관의 친시장경제 정책에 대해 "기조도 같고 공감도 한다"고 밝혔지만 법무부 내부에서는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27일 법무부에 따르면 경제 관련 정책 조언을 해 왔던 허남덕 법무장관 정책보좌관이 지난 7월 친정인 재정경제부로 돌아간 뒤 경제관료 출신의 후임자가 아직 정해지지 않고 있다.

허 보좌관은 김 전 장관이 재경부에 공식 요청해 1년간 파견 근무를 해 왔으며 경제 관련 이슈들을 정리해 김 전 장관에게 직접 보고하는 등 법무부에 '경제 마인드'를 심는 역할을 해 왔다.

그는 분식회계를 스스로 고백하는 기업에는 형사 처벌을 면제키로 하고 기업 설립과 관련된 각종 규제 폐지 및 담보 제도 개선 등 지난해 김 전 장관이 추진했던 각종 기업경영 개선 정책들에 대해 조언해 왔다.

김 전 장관이 추진하던 '로비스트 양성화 법안'도 일단 보류된 상태다.

법무부 관계자는 "신임 장관에게 현황 보고를 준비하느라 법안 추진이 유보된 상태"라며 "계속 추진 여부는 장관의 의중에 달렸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로비스트 양성화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아직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국가청렴위원장을 지낸 정 장관은 한국 사회의 부패 지수가 높으며 좀 더 투명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어 로비스트 양성화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정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의 청렴도가 10점 만점에 5.2점,163개국 가운데 42위로 경제 규모나 교역량에 비해 낮게 평가되고 있다"며 "이런 저평가는 주로 기업 회계의 투명성이 부족하고 불법 행위에 대한 적발·처벌이 가볍다는 점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조금 더 강조점을 둔다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기업 활동을 법률적으로 지원해 주고 동시에 책임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에 비해 '당근'보다는 '채찍'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는 얘기다.

한편 김 전 장관이 추진하던 '상법 회사편' 개정안의 경우 법무부는 계속 진행한다는 입장이지만 재경부가 비슷한 성격의 '상장법인에 관한 법률'의 별도 입법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증권거래법 등 6개 법안을 합친 자본시장통합법이 새로 만들어짐에 따라 상장사에 대한 법규를 별도로 만들어야 하는데 법무부는 '이중대표 소송'을 제외키로 하는 등 기업에 불필요한 부담을 지우는 '남소(濫訴·소송 남발)' 방지 방안에 대해 재경부보다 더 관심을 기울여 왔다.

상장사 관련 규정을 상법에 통합시키는 '회사법 일원화'를 강력히 추진하던 김 전 장관이 물러난 뒤 정 장관이 재경부와의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