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후판값의 지속 급등세 속에서 포스코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시세를 반영해 가격을 올리자니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국내 조선산업의 발목을 잡을 것 같고, 그냥 두자니 유통시장 왜곡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딜레마 속에서 장고(長考)를 거듭하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후판 가격차를 이용한 유통시장 교란 행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국내 최대 후판 생산업체인 포스코가 수요업체의 가격동결 요구와 시장 정상화 필요성 사이에서 고심하고 있다.


포스코를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자사 제품이 종종 경쟁사 제품으로 둔갑돼 팔리는 유통시장 교란행위다.

세계 최고 품질의 포스코 후판이 오랜 기간 낮은 가격을 유지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포스코가 공급하는 후판은 t당 60만5000원으로 동국제강이나 수입산 제품보다 t당 10만~20만원 싸게 팔리고 있다"며 "이에 따라 포스코 후판에 동국제강 라벨 등을 붙여 판매해 부당이득을 취하는 불법 유통행위가 성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후판 유통시장은 기능을 거의 상실한 상태다.

공급부족에도 불구하고 수입확대보다는 '포스코 쏠림' 현상만 심화되고 있다.

포스코 후판을 확보하기만 하면 수입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이득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후판 유통시장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가격을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후판의 최대 수요처인 국내 조선업체들의 가격 동결 요구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후판대란'으로 불릴 정도의 심각한 공급부족 상황에서 가격마저 상승한다면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조선업계가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는 "포스코가 냉연업체에 소재인 열연강판을 오랜 기간 싼 가격에 공급한 것이 현재 냉연 공급과잉을 불러온 원인 중 하나"라며 "제품 가격을 시장 원리에 맡기는 것이 장기적으로 업계 전체를 위해서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했다.

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