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한국은행의 외화대출 규제가 민원을 야기하는 무리한 조치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기존 대출에 대한 용도제한은 과도한 조치인 만큼 만기연장 허용 등의 보완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은행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어 갈등이 커지고 있다.

27일 금융계에 따르면 각 은행들은 외환당국의 외화대출 규제가 지나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최근 은행연합회를 통해 '외화대출 용도제한 관련 건의서'를 한국은행에 제출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8월부터 외화 실수요자에 한해 대출을 운용토록 창구지도를 해 왔으며,올 8월10일부터는 외화대출의 용도를 해외사용 실수요 목적과 제조업체의 국내 시설자금으로 제한했다.

은행들은 건의서에서 "외화대출 용도를 제한하기 위한 한국은행의 창구지도는 공식적 관련지침이 없었던 것으로 은행의 강제적인 이행 근거는 미미하며 외환자유화정책과도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또 "용도제한을 8월2일 발표하고 8월10일부터 시행하는 등 경과규정이 없고 급박하게 시행함으로써 고객이 강하게 반발하는 등 민원이 초래되고 있다"며 "여기에다 고객의 외화대출 상환 또는 원화대출 전환 기피시 은행영업의 건전성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은행들은 이에 따라 기존대출의 경우 △20% 범위 내에서 일부 상환하는 경우 기간연장을 허용해야 하며 △일정기간 유예를 둬 외화대출 상환 및 원화대출로의 전환에 따른 손실관리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행들은 또 일반시설자금의 경우 한국은행이 정한 세칙에 따라 각 은행이 자율적으로 지원범위를 설정해 놓고 있는데 대출통화가 외화라는 이유로 차별을 두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한은을 공박했다. 은행들은 이런 논리를 토대로 △서비스업 등 비제조업에 대한 시설자금 △차주의 자기자금 등으로 이미 집행한 시설자금 △사회간접자본,신디케이트 외화대출,외화무역어음대출,중기특별외화자원 운영자금 등에 대해선 예외 인정을 해줄 것을 건의했다.

한국은행은 이러한 은행들의 건의를 일축하고 나섰다. 한국은행은 '답변서'에서 기존대출의 연장 요구와 관련,"용도제한 대상이라 하더라도 만기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 자금조달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했으며 이미 지난 7월12일부터 기본방침을 밝힌 바 있어 건의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비제조업의 시설자금 대출 예외 인정 건의에 대해선 "용도제한 범위를 완화할 경우 외화대출의 상당한 증가와 이에 따른 외채 누증도 우려된다"며 역시 수용 불가 입장을 전했다. 사회간접자본이나 신디케이트 외화대출 등에 대한 예외인정 요청에 대해서도 "자금의 특수성 만으로 허용해 주는 것은 용도제한 조치의 취지에 비춰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한은의 답변을 받아 든 은행 관계자들은 한은이 외채감축 및 원화절상 압박 완화라는 정책 목적에만 치중해 기업들의 애로나 현장에서의 고충에 대해선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태도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