兪炳圭 < 현대경제연구원 상무 >

국내 건설 경기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건설 경기 침체는 크게 세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우선 민간 건설 부문의 활력이 상실되고 있는 점이다.

건설 수주 전체적으로 보면 여전히 민간 부문의 비중이 크지만 최근 들어 공공 부문에 비해 민간 부문의 수주 실적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7월에는 공공부문 수주 증가액이 전년동기에 비해 34%나 늘었으나 민간부문은 20%가 감소했다.

둘째는 미분양 물량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점이다.

올해 상반기 미분양 주택은 9만가구에 달한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의 최대 물량이다.

미분양 물량은 지방이 93.8%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나,최근에는 인천과 경기 등 수도권 지역의 미분양 증가율이 급등해 미분양 사태가 수도권 지역으로까지 급속히 번지고 있다.

셋째는 중견 기업들의 '도산 도미노' 현상이 우려되는 점이다.

미분양 등으로 건설사의 투자 비용이 적기에 환수되지 않으면 중견 건설사들의 흑자 도산이 줄지을 가능성이 높다.

건설 경기 침체의 심각성은 국내 경제 전반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심대한 데 있다.

우선 체감(體感) 경기 악화의 주요인으로 작용한다.

건설업은 국내총생산의 15% 내외를 차지하고 있으며 서민 고용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

더욱 우려되는 문제는 금융 부실로 이어져 국내 경기의 회복 흐름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가계 대출의 상당 부분이 주택담보부 대출인 점을 감안할 때 주택 가격의 급락은 담보 가치를 훼손시켜 금융 회사의 수익 악화로 직결된다.

더욱이 중견 건설업체들의 부도 사태는 그동안 이들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부실하게 만든다.

이는 저축은행 등 PF 관련 금융회사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이에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금융 회사 전반의 경영 여건을 어둡게 할 수도 있다.

금융회사의 경영 위기는 금융 경색을 초래해 결국 실물 경기의 회복을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지금의 건설 경기 부진은 역설적으로 그동안 공들여 추진한 부동산 정책의 효과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강력한 수요 억제는 필연적으로 수급의 괴리(乖離)를 초래해 미분양을 유발하고 주택 가격을 하향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정책 효과가 너무 확실해 국내 건설 경기가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까지 추락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경기의 안정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이를 위해 건설 경기 자체를 죽이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결국 지금은 건설 경기의 급랭을 막기 위한 정책의 미세 조정이 시급한 때다.

무엇보다 건설 부문의 시장 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

원활한 수급 조절을 옥죄는 과도한 시장 규제는 이제 필요에 따라 완화해야 한다.

당장 지방에서만이라도 세제와 금융 규제를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

미분양 주택의 최초 분양자가 일정 기간 보유한 경우 양도 소득세를 면제해주거나,임대 주택 전환 시 세제 지원 등을 요청하는 지방 건설업체들의 건의를 정부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더 나아가 분양가 상한제,원가 공개 등이 주택 수요와 공급을 원활히 연계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해 건설 경기의 불안을 심화시킨다는 지적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경직된 공급 규제는 대기 수요를 늘려 미분양 사태를 악화시키고,분양가와 시가의 격차로 또 다른 투기 요인이 되며,고급 주택 수요에 대한 공급을 억제해 기존 인기 지역 내 부동산 가격의 상승만 부추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의 본질이 미국 부동산 경기의 둔화에 있음을 인식할 때,지금의 국내 건설 경기 침체 현상을 결코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역대 최고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었던 그린스펀은 최근에 이 문제가 미국 경제에 광범위한 영향을 줄 만큼 심각해질 줄은 몰랐다고 '실토'했다.

지금은 국내 경기 관리 관점에서 보면 작은 부작용에서 파생될 수 있는 큰 위험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할,참으로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