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선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탈(脫)색깔'이다.

한나라당 뿐만 아니라 범여권 대선 후보들도 이념보다는 경제·민생을 화두로 삼으며 각 당의 이념적 차별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보수와 진보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며 '색깔론' 등이 난무했던 지난 대선들과 사뭇 달라진 양상이다.

이번 대선의 이 같은 경향은 '탈이념화'돼 가는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보수와 진보의 중간에서 '실용'을 무기로 표심을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전에서 각 후보들은 개혁과 진보보다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 살리기를 내걸고 있다.

당내에서 "우리당 후보들이 대북정책의 구체성을 제외하고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정책적 색깔에서 차별되는 점이 적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나라당에서 옮겨 온 손학규 후보가 단적인 예다.

자신의 '뿌리'에 대한 공격에 "좁고 낡은 이념에 갇혀 있지 말고 국민의 행복을 위해 과감히 바꾸자"고 맞받아치는 손 후보는 그런 '탈색'을 자신의 최대 강점으로 꼽고 있다.

그는 지난달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젊은 시절 진보를 실천했고,해외로 나가 시장경제도 체험했다"며 "진보와 보수를 아우를 수 있는 통합의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정동영 후보도 개혁노선보다는 경제 위주의 실용노선을 표방하고 있다.

이명박 후보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 이 후보가 가진 것은 돈과 땅 밖에 없다"며 이념에 대한 것보다는 도덕성과 경제 정책의 실효성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다.

이해찬 후보 역시 초기에는 "올해 대선은 개혁 세력이 결집해 승리해야 한다"며 진보성향의 유권자에 호소했지만 이후 순회 합동연설회에서는 지역공약 설명 등 민생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명박 후보는 "1987년의 체제를 넘어 선진국 진입을 위한 2008년 신(新) 발전체제를 열겠다"며 '실사구시 대통령'을 선언한 바 있다.

'좌·우,진보·보수'개념을 허물고 현실적 차원에서 국민들에게 무엇이 도움이 될 것인지를 중시하겠다는 의미다.

'비핵 개방 3000(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과감한 지원을 통해 북한 경제를 10년 안에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비롯 한나라당의 기존 보수적 시각에서 벗어난 획기적인 대북정책들도 잇달아 내놨다.

대기업 하도급 비리 척결 등 진보적 색채의 공약을 앞세우고 있는 문국현 후보도 마찬가지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정치적 성향을 옛날 잣대로 재는데 국민은 관심 없다.

진보냐 보수냐 하는 것은 분열적 상황을 이용하는 이들의 사고방식일 뿐"이라며 "지금 전 세계는 융합의 시대,미래지향적 2.0사회"라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도 "친기업 이상으로 기업과 함께 할 것"이라며 급진적 이미지를 벗기는데 주력하고 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