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이광구 '어떤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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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알겠느냐?
사립마당에 동구 언덕에
달,별,풀,이슬,하얀 이름 새겨두고
도시로 가서
도시의 인부가 되어 살다
불 하나 꺼뜨리고 돌아오는 들바람 같은 널
누가 알겠느냐
가슴 안에 두 손밖에
잡히는 것 없어 흔들리는 빌딩 사이
반짝이는 빈 세월만 보고 살더니
이제 다시 보는구나!저 낯익은 것들
낮은 바람에도
고개 끄떡이는 억새풀들 사이로
잃어버린 시절 동그라니 누워
손을 흔드는구나
알겠느냐?
고사리손 흔들며 떠날 땐 언제고
빈 손의 눈물 뿌리며 오는
네가 누구이며 무엇인지를
이제,
알겠느냐?
-이광구 '어떤 귀향'전문
성공한 자는 대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돌아갈 필요도 없다.
어느 곳에서든 주인이니까.
귀향은 실패한 자가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이다.
석양 받아 번뜩이는 억새풀 사이,들바람 맞으며 고향 앞에 서면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느낀다.
삶에는 성공보다 실패가 많다는 것을,실패한 자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생이 저물 무렵 빈 손으로 눈물 뿌리며 고향에 돌아가 그것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