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후쿠다 야스오 신임 총리는 지난 25일 밤 취임 직후 총리관저에서 비장한 각오로 기자회견을 했다.

"이번 내각은 여차하면 정권을 내놓아야 하는 '배수의 진 내각'입니다.

한 걸음이라도 잘못 디디면 정권을 잃게 됩니다.

전력을 다해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날 회견은 자민당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그의 말대로 자민당 정권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지난 7·29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참패한 후 낮은 지지율은 좀처럼 올라가지 않고 있다.

참의원을 장악한 민주당 등 야당은 하루라도 빨리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해 국민의 심판을 받자며 압박 중이다.

결국 내년 상반기 안에 조기 총선을 실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그러지 않고는 참의원의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할 수 없다.

정권을 건 운명의 승부를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지난 50여년 만년 집권당인 줄 알았던 일본 자민당의 위기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과연 일본에서도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질 것인가.

그 답을 찾기 위해 자민당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본다.


◆유례없는 50여년 장기 집권

자민당은 민주국가에선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장기 집권을 했다.

자민당이 탄생한 건 1955년 11월.당시 보수 정파였던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당해 만들어진 게 자유민주당(자민당)이다.

그해 10월 좌파 사회당과 우파 사회당이 합당해 단일 사회당을 결성한 데 대한 보수 우파의 대응이었다.

이때부터 일본 정치는 우파 자민당과 좌파 사회당의 양당 구조로 형성됐다.

이를 '55년 체제'라고 부른다.

그러나 말이 양당 체제였지 사실상 자민당 절대 우위였다.

자민당은 1958년 5월 중의원 선거에서 57.8%의 득표율로 287석(61.5%)을 차지한 이후 역대 중의원 선거에서 제1당을 독차지해왔다.

보수 자민당의 안정적 집권은 일본의 1960~70년대 눈부신 고도성장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자민당도 한때 정권을 놓친 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 기간이 1년도 안 돼 일본 국민들도 거의 기억하지 못할 정도다.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역대 최저 득표율인 36.6%를 얻는 데 그쳐 호소카와 모리히로를 총리로 내세운 7개 야당 연합(일본사회당·신생당·공명당·민사당·민주개혁연합·일본신당·신당사키가케)에 정권을 내줬다.

1980년대 말부터 잇따라 터진 리쿠르트 사건(1988년),도쿄사가와규빈 사건(1992년) 등 자민당 지도부의 부패 스캔들과 1990년대 초 버블(거품) 경제 붕괴가 겹치면서 잠시 정권을 상실했던 것.

그러나 호소카와 총리가 정치자금 문제로 8개월 만에 퇴진하고 이후 등장한 하타 쓰토무 내각도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비(非) 자민당 연합정권은 10개월 만에 허무하게 무너진다.

이후 자민당은 비록 일부 정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꿋꿋이 정권을 지키고 있다.


◆냉전과 파벌정치의 산물

자민당이 50여년간 장기 집권을 할 수 있었던 건 안팎의 여건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밖으론 1950년대 이후 냉전체제를 들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미·소 대립이 격화되면서 미국은 자유민주진영의 동아시아 교두보로 일본이 절실했다.

그런 국제 정세가 친미 보수 자민당의 든든한 배경이 됐다."(신희석 아태정책연구원 이사장)

내적으론 일본의 파벌정치가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자민당은 출범 때부터 당내 여러 파벌이 존재했다.

이들 사이에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면서 총리 자리를 둘러싼 '파벌 간 정권 교체'가 이뤄져 왔다.

그 같은 당내 정권 교체도 정책과 인사의 변화를 가져와 여야 간 정권 교체와 비슷한 효과를 낸 셈이다.

대표적인 게 1970년대 벌어졌던 '가쿠후쿠(角福) 전쟁'이다.

당내 맞수였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 파벌과 지금 후쿠다 총리의 아버지인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전 총리 파벌의 권력 투쟁이다.

자민당 총재 자리를 놓고 벌인 돈(정치자금)과 지지 의원 확보 경쟁은 여야 정쟁을 뺨쳤다.

이런 파벌정치는 일본 정치의 아킬레스건인 금권정치와 그로 인한 정경유착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지방과 농촌의 공고한 지지 기반이다.

자민당의 핵심 지지층은 누가 뭐래도 농어민과 영세 중소상공업자들이다.

자민당은 이들을 각종 조합과 협회 등으로 조직화해 탄탄한 표 기반을 다져왔다.

그들을 위한 정책 특혜도 아끼지 않았다.

농촌 지역에 의원 수가 상대적으로 많이 배분돼 있는 선거구 체계도 자민당의 장기 집권에 버팀목이 됐다.



◆내년 봄 정권 내놓을 가능성

전문가들은 자민당이 조만간 정권을 잃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자민당의 장기 집권 요인들이 지금은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선 자민당 집권의 배경이었던 냉전체제가 해체됐다.

1993년 잠시나마 자민당이 정권을 놓쳤던 것도 1991년 소련 붕괴로 냉전이 종식됐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자민당의 집권 기반인 농촌과 지방의 조직표도 상당히 흐트러졌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개혁으로 지방의 반관반민 단체들이 대거 민영화됐고,각종 협회나 조합에 대한 정부 지원도 끊겼다.

지난 참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가타야마 도라노스케 자민당 전 의원은 "과거와 달리 지역구의 협회나 조합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일본 국민들이 이제 파벌·금권정치에 신물을 내고 있다는 것도 악재다.

지난 참의원 선거 때 자민당이 참패한 것도 아베 내각 각료들의 잇단 정치자금 부정이 터져나온 게 결정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새로 출범한 후쿠다 정권의 앞길은 밝지 않아 보인다.

후쿠다 총리 선출 과정에서 자민당의 파벌정치는 되살아났고,당정인사에서도 파벌 보스들의 나눠먹기 행태가 연출됐다.

야당의 강력한 정치 공세도 후쿠다 내각의 전망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은 후쿠다 내각이 출범하자마자 조기 중의원 해산을 요구,여야간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6일 야당이 과반수 이상을 장악한 참의원을 대여 공세의 주무대로 삼아 중의원 해산을 관철시켜 차기 총선에서 정권을 빼앗겠다는 전략을 분명히 했다.

이를 위해 오자와 대표는 우선 여당이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고 있는 테러대책특별조치법(11월1일 시한)의 연장을 저지하는 동시에 참의원에서 예산 집행 등에 관한 국정조사권을 발동,여권을 무력화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후쿠다 총리가 취임 기자회견 등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년 3~4월 예산안 처리 이후 여야 합의에 의한 조기 중의원 해산 및 총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자민당은 내년 3월 말까지 2008회계연도 정부 예산안과 부수 법안을 통과시켜야 하지만 참의원 의석 수에서 과반에 못 미쳐 법안 통과를 위해선 야당과의 타협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총선 결과에 자민당 정권의 운명이 달려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