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昇夏 < 시인·중앙대 교수 >

최근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멸종(滅種)이 우려되는 4만1415종의 동식물을 조사해 보았더니 이 가운데 39%인 1만6306종이 조만간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더라는 것이다.

1만6306종 가운데 인간과 계통이 가장 가까운 아프리카의 '서부 로랜드 고릴라'는 지난 15년 동안 에볼라 바이러스의 창궐로 개체(個體) 수가 격감해 앞으로 10~12년 안에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세계자연보전연맹이 발표한 것 중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연구 대상이 된 4만1415종 동식물의 개체 수가 지난 10년 동안 90%나 줄었다는 것이다.

일본 NHK 위성방송 '생명의 묵시록' 프로젝트팀의 하야시 나오히사 대표는 20세기 100년 동안 멸종한 동물이 200종이 넘는다고 했다.

도서출판 도요새에서 번역돼 나온 '지구에서 사라진 동물들'을 보니 동물의 멸종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 때문이 아니라 대개의 경우 인간의 물욕과 식욕 때문이었다.

바첼사바나얼룩말은 가죽이 아름답기 때문에 가죽가공산업이 번창하는 과정에서 죽어갔다.

배드랜드 큰뿔산양은 아름다운 뿔 때문에,카스피 호랑이는 멋진 모피 때문에 집 내부의 장식품이 되는 과정에서 죽어갔다.

동물들이 원주민 지역 근처에서 살던 시절에는 사냥의 대상이 되긴 했지만 늘 적당한 개체 수를 유지했다.

인간과 동물이 수천,수백년 동안 공존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산업사회 혹은 문명사회의 바람이 불어닥치면 동물은 가진 자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급격히 그 수가 줄어들어 멸종의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길버트쥐캥거루는 쥐를 닮은 것이 사라진 이유였다.

영국인들이 오스트레일리아 서부로 이주해 와서 농장을 만들자 작물을 죄다 먹어치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고양이를 대량으로 풀어 최후의 한 마리까지 잡아먹게 했다.

흡사 메뚜기처럼 지구상에 50억마리나 살아 하늘을 뒤덮곤 하던 여행비둘기는 장거리 비행을 위해 발달한 가슴근육의 맛이 뛰어나 무자비하게 남획돼 1914년에 절멸했다.

괌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자 그 지역 고유의 별식을 찾는 미식가들을 위해 괌 과일박쥐가 제공됐고,1968년 마지막 한 마리마저 레스토랑에서 요리됐다.

캐롤라니아 잉꼬와 아즈에로 거미원숭이는 산림이 개간(開墾)되는 바람에 서식지가 없어져 함께 사라져버렸다.

우주개발의 희생양이 된 새도 있다.

케네디 우주센터를 만드는 공사장에 모기가 몰려들자 인근에 하천이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해 물줄기를 바꿔버렸다.

습지대가 말라버리자 억울하게 절멸한 것이 검노랑해변쇠멧새이다.

21세기에는 지구온난화가 많은 동식물의 멸종을 가져올 것이다.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 멸종할 물고기가 무진장 많을 테고 육지의 사막화에 따른 동식물의 멸종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북극과 남극 대륙이 급속도로 녹고 있으므로 이것 또한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세계 곳곳의 홍수와 가뭄,태풍과 한파도 자연재해만으로 볼 수 없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세운 공장과 생산한 차량,사라진 숲과 매립한 바다,버린 쓰레기와 태운 쓰레기가 총체적으로 심술을 부린 결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야생동물의 지옥이다.

흉측한 사냥도구,덫,총기,약물 등에 의해 살해되는 야생동물의 수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물욕과 식욕을 지금처럼 채우며 살아간다면 22세기를 맞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계 곳곳의 기상이변이 조물주의 계시 같다.

에이즈에 이어 조류독감,광우병,사스까지 인류의 앞날을 위협하고 있건만 우리는 너무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1만6306종의 동식물은 지난 수만년 동안 우리 인류와 함께 숨쉬며 살았을 텐데 이제 모두 사라질 운명이라고 한다.

소비가 미덕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근검절약을 후세에게 가르쳐야 한다.

지구온난화는 인류의 과도한 소비욕구가 초래한 재앙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