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佶炫 < 제주대 교수·정치학 >

아라비아 숫자를 쓰지 않는 나라.국민의 89%가 불자(佛者)인 나라.쌀과 티크,천연가스,석유 등 자원이 풍부하면서도 국민들은 가난하게 사는 나라.풍부한 자원을 빼먹으려고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나라가 달려들고 있는 나라.야당이 선거에서 이기고도 정치권력을 이양받지 못하는 나라.헌법을 정지한 채 의회도 없이 19년이나 군부평의회의 칙령으로 무단통치를 하고 있는 나라.

이렇게 고립과 통제 그리고 가난으로 잊혀진 듯싶은 미얀마(버마)가 최근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인터넷과 디지털 카메라,휴대전화를 통해 군부에 대한 미얀마 국민들의 용틀임 같은 저항이 실시간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한 나라에도 정보화의 위력은 그렇게 컸다.

그러나 돈벌이 대상으로나 인식되던 미얀마에서 갑작스럽게 민주화의 새 시대가 열리는가 하는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잔인하다.

1988년 때처럼 이번에도 강제진압 속에서 죽어가는 미얀마의 불쌍한 사람들에 대해 연민의 정을 느끼는 것으로 끝나 버릴 가능성이 더 커 보이기 때문이다.

19년 전인 1988년에도 잘 살아보려고 미얀마 국민들이 들고 일어섰었다.

88항쟁이라 일컬어지는 미얀마 국민들의 성대한 민주화 투쟁이 촉발하게 된 배경은 식량 부족이었다.

쌀 곡창지에서 식량이 부족해 쌀 가격이 3배나 폭등하게 됐다는 것은 네윈 군부정권의 경제관리가 얼마나 무능력한 것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통용되던 화폐를 아무런 보상 없이 못 쓰게 하는가 하면 유엔으로부터의 최빈국(最貧國) 대우를 기대하면서 경제 지원을 구걸하는 군부통치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퇴출 대상 1호였다.

개발독재의 논리가 무너진 곳에서 아웅산 수치가 새로운 정치적 대안(代案)으로 혜성처럼 나타나 미얀마 국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1990년 5월 다당제 총선에서 82%의 의석을 차지할 정도로 아웅산 수치의 NLD(민주국민연맹)에 대한 기대는 컸다.

그러나 기대가 큰 만큼이나 좌절도 컸다.

그 이후 19년에 걸쳐 또 한 번 미얀마 군부의 철권통치가 지속되면서 미얀마 국민들은 체념에 빠진 채 내세(來世)에서나 미래를 기약하는 듯싶었다.

간혹 아웅산 수치의 비폭력 민주화 투쟁만이 언론에 흘러나올 뿐 그렇게 조용하던 미얀마에서 2007년 9월 다시 역동적인 마그마의 표출이 일어난 것이다.

지난 19년 동안 군부의 철권통치에 대항하는 게릴라식 반(反)정부투쟁이 간헐적이고 소규모로 있어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10만명이 시위에 참가하는 대대적 표출이라는 차이가 있다.

식량부족 사태에 항의하는 데서 시작했던 1988년과 유사하게 올해도 석유와 천연가스의 가격인상에 따른 500%의 물가급등에 항의하는 것으로부터 시동을 걸었다.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이 풍부한 미얀마에서 그 많은 수익은 다 어디로 가고 국민들만 못 살게 들볶고 있다는 누적된 불만이 동시다발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군부통치의 무능력과 허구성이 다시 한 번 백일하(白日下)에 드러난 것이었다.

1988년과 2007년의 유사성은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1988년처럼 군부의 강경진압으로 막을 내리는 '좌절된 민주화운동'으로 끝날지,아니면 미얀마 '경제 문제의 정치적 해결'로 나아가는 모종의 타협적 변화가 주어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미얀마의 밝은 미래를 염원하는 국제사회 일반의 기대와 바람이 미얀마 군부정권과 손잡고 자국(自國)의 이익을 챙기려는 각국의 이해관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은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거의 부정적이다.

국가이익이라는 게 그렇게 피도 눈물도 없이 냉혹한 것이다.

비관적 전망에 보다 더 가까운 유동적 상황에서 유일한 돌파구는 미얀마 국민 자신의 몫으로 남아 있다.

국제사회의 편승을 이끌어내는 미얀마 국민들의 영웅적 행보만이 미래의 가능성을 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영웅적 행보에는 많은 희생이 따를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안타까움은 더욱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