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가치의 급격한 하락은 파괴력이 크다. 외환시장은 물론 원자재시장도 영향권 안이다.

최근 들어 곡물값이 뛰면서 각국에 인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나는 것이나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것도 모두 달러화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달러 약세 흐름이 불가피하다는 쪽이다.

미국의 경기 침체가 금리 인하를 불러오고,이는 다시 달러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가속화되는 달러화 약세


1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가치는 유로당 1.42달러 선에 진입하며 1999년 유로화 출범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8월 중순 이후 한 달 반 만에 6% 이상 하락했고 연초에 비해서는 10%가량 떨어졌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은 연내 유로당 1.5달러 시대가 올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원화에 대해서도 줄곧 약세다.

최근 한 달여 동안 950원대에서 910원대로 4% 이상 미끄러졌다.

캐나다달러와 비교한 달러 가치는 3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가라앉았고 엔화에 대해서도 3분기(7~9월) 중 7.3% 하락했다.

모든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팔고 다른 통화를 사려는 주문이 줄을 이은 결과다.

◆불붙은 원자재시장


달러 가치 하락은 원자재시장에 후폭풍을 몰고왔다.

달러 위상이 흔들리면서 밀 옥수수 금 등 실물자산으로 돈이 몰렸다.

금값은 온스당 740달러를 넘어서며 2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올 들어 옥수수와 콩 가격은 각각 1년 전에 비해 40%와 75% 올랐다.

밀 가격도 70% 이상 뛰었다.

달러 약세는 원유 가격 상승에도 큰 몫을 했다.

국제 유가는 9월 한 달간 11.4% 오르며 배럴당 80달러를 돌파했다.

원유의 주요 결제대금인 달러 약세가 가속화하면서 손해를 보고 있는 산유국들이 증산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모하메드 빈 알 함리 의장은 "달러 약세로 OPEC 회원국들의 구매력이 심각하게 감소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각종 원자재값이 일제히 상승하면서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전 세계 원자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중국은 8월 한 달 동안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6.5% 상승했다.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유럽연합(EU) 13개 회원국의 평균 소비자물가도 9월에 2.1% 올랐다.

EU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를 넘은 것은 2006년 8월 이후 1년1개월 만에 처음이다.

일부에서는 연말에 2.5%까지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에 팽배한 추가 달러 약세론


글로벌 달러 가치 하락세는 4분기(10~12월)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미국 경제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데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추가 금리 인하 기대감이 달러 약세를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감은 갈수록 높아지는 양상이다.

8월 비농업부문 고용자 수는 4년 만에 처음 감소했고 8월 신규 주택 판매도 7년래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월가 이코노미스트 52명을 대상으로 한 '9월 경제 전망 조사'에서 '미 경기가 앞으로 1년 안에 침체에 빠질 가능성'은 평균 36.3%로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8월 조사(28.2%)에 비해서는 8.1%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바클레이즈캐피털의 데이비드 우 애널리스트는 "미국 경제가 처한 위험 등을 고려할 때 달러화 가치는 4분기에도 하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으며 3분기보다 하락폭이 더 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상황이 급반전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번 주 줄줄이 발표되는 미국 비농업부문 취업자 수와 ISM 제조업지수,제조업 수주액 등의 지표가 금융시장의 예상치를 넘어서면 달러화 가치가 바닥을 찍고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뱅크 오브 뉴욕 멜론의 닐 멜러 애널리스트는 "금융시장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며 "현 수준의 달러는 과매도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유병연/안재석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