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세계적 화학회사인 랑세스가 총 6억유로(7800억원)규모에 이르는 아시아 지역 직접 투자에 나서면서 한국 1차 후보국에 포함시켜 왔으나 최종 결정 단계에서는 번번이 제외한 것으로 밝혀졌다. 기술 수준이나 시장 여건 등에서는 문제가 없었으나 강성 노조가 한국을 외면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악셀 클라우스 하이트만 랑세스 회장은 최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전 세계 언론 대상 기업설명회에서 기자와 만나 "한국에 새로운 생산시설을 짓거나 관련 기업을 인수·합병(M&A)할 구체적인 계획이 현재로선 전혀 없다"고 밝혔다.

특히 아시아지역 총 투자액의 절반 정도 되는 3700억원가량이 들어가 규모가 가장 큰 타이어원료 부틸고무 생산공장 후보지로 지난 2년여간 한국 중국 싱가포르 등 8개국을 후보지로 놓고 검토했으나 한국은 중간에서 탈락했다고 그는 말했다. 하이트만 회장은 한국이 빠진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기 곤란하다"며 답변을 피했다.

랑세스는 이에 앞서 독일에 있는 화학고무 공장을 한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결국 포기했다. 화학첨가제 등의 공장 설립에서도 한국이 후보지로 거론되기는 했지만 중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한국 관련 비즈니스를 맡고 있는 랑세스 관계자는 "현대자동차 등 기업들의 파업 관련 뉴스가 자주 외신에 보도되면서 형성된 '한국노조=강성'이라는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화학제품은 영하 160도의 초저온에서 생산하기 때문에 노조 파업으로 인해 가동이 중단될 경우 재가동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이 같은 화학산업 특성 탓에 한국의 강성노조가 후보지 선정 관련 심사에서 크게 부각됐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는 "한국 화학산업의 경우 생산 인프라가 뛰어나고 한국타이어·금호타이어 등 세계 10위권에 드는 타이어 회사가 두 곳이나 있어 랑세스의 아시아 투자 유력 후보지로 오르긴 하지만 최종 과정에서 강성노조 문제가 매번 지적된다"고 말했다.

랑세스는 이에 따라 직접 투자 대상국으로 한국보다 인프라가 뒤떨어지고 내수시장 규모도 작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을 우선 꼽고 있다.

하이트만 회장은 "부틸고무 생산공장 최종 후보지는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3곳으로 압축됐다"며 "이들 지역은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고 인력의 질이 높으며 에너지 수급 상황도 원활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이들 국가는 지난달 26일 세계은행(IBRD)이 발표한 기업환경 조사에서 각각 1위(싱가포르)·15위(태국)·24위(말레이시아)를 기록,한국(30위)보다 기업을 영위하기 위한 환경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이트만 회장은 하지만 "우리에게 한국은 여전히 아시아의 전략적 중심지"라고 언급,한국에서 노조문제 등 기업환경이 개선될 경우 투자가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랑세스는 지난해 초 총 6억유로를 투자하는 것을 골자로 한 '아시아를 향해(Go Asia) 계획'을 발표하고 차례로 이를 집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상하이 우시 등에 화학첨가제 등을 생산하는 5개 공장을 설립했다.

지난달 초에는 인도 구자라트주에 땅값으로만 390억원가량 들여 반도체와 제약산업에 이용되는 초순수를 생산하기 위한 이온교환수지 공장을 설립키로 결정했다.

랑세스는 독일의 다국적 기업인 바이엘사의 화학부문이 2004년 7월 분리(스핀오프)해 설립된 회사로 지난해 매출액이 69억유로(약 8조9000억원)를 기록했다.

전 세계 21개국에 2만여명의 직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합성고무,부틸고무,플라스틱첨가제 등 다양한 화학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런던=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