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려는 백탑파의 열망이 제 모습과 닿아 있어서 이들에게 매력을 느낍니다."

인기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황진이'의 원작 소설가로 유명한 김탁환씨(39)가 신작 장편소설 '열하광인'(전2권,민음사)을 내놨다.

'방각본 살인사건''열녀문의 비밀' 등 이른바 '백탑파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백탑파는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탑골공원 원각사지 10층 석탑에 모여 시국을 논한 조선 시대의 실학자들.

'열하광인'은 정조시대 문체반정 시기의 이야기다.

문체반정이란 정조가 '열하일기'와 같은 참신한 문장을 금하고 정통적 고문(古文)을 쓰도록 한 것을 말한다.

소설은 금서였던 '열하일기'를 읽는 모임인 '열하광' 회원들이 차례차례 살해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중 이명방이 유일하게 살아남지만 그도 살인 누명을 쓰게 된다.

김씨가 백탑파에 관심을 가진 것은 대학시절 이들의 글을 접하면서부터였다.

그는 고전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감각적이고 도시적인 백탑파의 글들에 매료됐다.

하지만 백탑파에 관한 소설을 쓴 것은 그들의 글보다 개혁운동 과정에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에 도움이 되는 실학을 내세워 세상을 바꾸려 했지만 개혁이라는 '명분'에만 몰두하게 된 백탑파의 모습을 보고 참여정부를 떠올린 것이다.

"금서를 읽은 이들 중 정조에게 반성문을 쓴 사람들은 주요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지만,백탑파는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유연성을 발휘했더라면 개혁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남지요."

그는 현재 진행 중인 왕오천축국전의 소설화 작업 외에는 다음 작품을 아직 구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소설에 담고 싶었던 모든 생각을 '열하광인'에 다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문체반정이 생긴 것 자체가 개혁파의 힘이 바닥을 쳤다는 것을 의미하죠.저도 '개혁'에 대한 모든 생각을 이번 작품에 담았다는 점에서 바닥을 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