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에 입법예고한 시행령 개정안에서 논란이 되는 핵심 조항은 '가격남용행위 판단 기준(5조1항)'이다.

공정위는 '제품 가격이 정당한 이유 없이 비용에 비해 현저하게 높은 경우'에도 제재를 가하겠다는 내용을 개정안에 추가했다.

또 비슷한 상품들의 가격이나 이익률을 비교해 가격남용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도 넣었다.

이 같은 규제는 기업들이 추구하는 '이윤'을 직접 건드린다는 점에서 적지않은 논란이 제기돼왔다.


◆어떤 규제 도입하나

공정위는 현행 법령에 따라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비용상승분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판매가격 인상을 시도할 경우에는 가격남용 제재를 할 수 있다.

예컨대 시장점유율이 매우 높은 설탕회사가 원당가격 5% 상승을 이유로 소비자가격을 20% 인상할 경우 공정위는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등의 제재를 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에 따르면 '상품의 가격이나 용역의 대가를 수급 변동이나 공급에 필요한 비용의 변동에 비해 현저하게 상승시킨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이번에 새롭게 도입하려는 조항은 비용 상승과는 관계없이 이윤 자체의 적절성 여부를 공정위가 심사하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오랜 연구 끝에 휴대폰의 동영상 응답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킨 부품을 새로 개발해 생산원가의 3~4배 가격으로 제품을 납품할 경우 현행 법령으로는 '과감한 도전과 투자로 새로운 시장을 연 것에 대한 당연한 대가'로 인정해 가격남용 처벌을 하지 않지만,바뀌는 개정안에 따르면 공정위는 비용대비 가격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가격남용 제재를 할 수 있게 된다.

위험을 무릅쓴 투자와 혁신을 통한 비용절감으로 이윤을 늘리려는 기업들에는 당황스러운 일이다.

◆왜 추진하나

공정위는 시행령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법과 시행령의 불일치'문제와 '법적 공백의 교정'을 내세우고 있다.

공정거래법에서는 가격·대가의 결정,유지,변경 등을 모두 가격남용 행위로 규정하고 있는데,시행령에서는 변경(상승 및 하락)만 남겨둬 법적 공백을 초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공정위는 개정안에 가격변동 외에 사업자의 가격설정 및 유지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가 가능하도록 했다.

비용보다 과다한 가격이나 비교가격 이익률 개념 등도 넣었다.

1980년대까지 시행령에는 가격 결정과 유지부문도 규제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나중에 이를 대상에서 뺀 것은 시장원리에 반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공정위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법과 시행령의 불일치 해소는 앞뒤가 바뀐 주장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안 추진 배경에 대해 공정위가 통신사업자 등에 대한 규제의 칼날을 더욱 벼르기 위해 시행령을 가다듬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경쟁원리에도 맞지 않아

공정위의 시행령 개정 시도는 시장원리를 훼손하는 부작용과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새롭게 늘어난 가격남용 판단 규정들이 시장경제에 독소조항으로 작용해 공정위가 제멋대로 기업의 가격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황인학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가격이 동종업종보다 높으면 남용으로 규제하고 가격이 비슷하면 부당공동행위(담합)로 규제할 경우 기업 활동을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반문했다.

외국에서는 기술 혁신에 따른 단기간의 독점을 '선'으로 보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가격남용 관련 판결에서 "독점가격을 부과할 수 있는 기회는 경영자로 하여금 혁신과 경제 성장을 위한 과감한 위험투자를 감행할 수 있게 한다"며 "단순한 독점력 소유와 독점가격 부과는 위법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시장경제의 중요한 요소"라고 판시했다.

유럽연합(EU) 역시 시장 참여를 인위적으로 방해하는 행위가 없다면 독점 이익 향유만으로 가격 남용으로 규제하지는 않고 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