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3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가진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과 평화체제 구축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김 위원장은 회담 자리에서 노 대통령에게 회담 일정 하루 연장을 요청했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회담을 마친 뒤 "김 위원장과 숨김 없이 진솔하게 얘기를 나눴다.

회담 결과가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다만 "한 가지 쉽지 않은 벽을 느끼기도 했다"고 전제하면서 "남측이 신뢰를 가지고 있더라도 북측은 아직도 남측에 여러 가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이어 열린 남측 주최의 답례 만찬사에서 "경제공동체가 형성되면 우리 중심으로 동북아에 큰 시장이 열릴 것이고,우리는 그 안에서 함께 번영을 누리며 동북아 협력과 통합의 질서를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경제공동체 건설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남북 경제공동체 구축하자"

노 대통령은 경제공동체 형성에서 얻을 수 있는 남북한의 이점을 김 위원장에게 제시하고 적극 설명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도 배석해 경협의 당위성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다.

김 위원장은 경제강국 건설을 기치로 내세웠기 때문에 노 대통령의 제안에 공감을 표시했다.

그동안 노 대통령은 기존 지원 위주의 경제협력 방식에서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생산적,쌍방향적' 투자협력을 강조해 왔다.

남측(기업)이 투자해 수익을 얻고 북측도 낙후된 경제를 재건시킬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중국과 러시아 대륙으로 진출하는 북방 경제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는 윈윈 구상이다.

노 대통령은 그러면서 '북한판 마셜 플랜'을 언급했다.

이를 위해 철도 도로 항만 등 북한의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SOC는 경제공동체 건설의 기반이어서 김 위원장을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북측도 수차례 △개성~평산,온정리~원산 간 철도 복구 △남북 연결철도 북측 구간 전철화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남포항 현대화·물류체계 정비 등을 협력사업으로 요청해 왔다.

경제공동체 건설 문제를 상시적,체계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남북 경제협력 연락사무소'를 서울과 평양에 각각 설치해 운영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두 정상은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

◆제2개성공단·경제특구 신설은

노 대통령은 이어 경제공동체 구축의 일환으로 제2개성공단 및 경제특구 신설에 관한 의견을 내놨다.

제시된 후보지는 남포·해주.남측 입장에서 해주는 기존 개성공단과 인천항에 가까워 물류 측면에서도 장점이 많은 지역이다.

북측으로서는 해군 서해함대 전력이 60% 이상 배치된 요충지라는 점에서 개방을 꺼리고 있는 곳이다.

노 대통령은 아울러 투자환경·제도적인 경협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는 점도 김 위원장에게 강조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이 같은 개방론에 김 위원장은 즉각적인 답을 피한 채 '속도론'을 제기했다.

노 대통령도 오전 회담 뒤 "우리는 개성공단을 아주 만족스러운 성공적인 사업으로 평가하고 있지만,북측이 속도의 문제에 대해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를테면 "우리는 공단을 개혁과 개방의 표본이라고 많이 얘기했는데,북측이 볼 때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지 않은 그런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이 경제공동체안에 거부감을 보이진 않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 제2개성공단과 경제특구를 신설하는 데는 상당히 신중하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반도 군축·평화체제도 논의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북핵,군사적 긴장완화와 군축 문제도 다뤘다.

이는 평화 체제의 기본으로 경제공동체 건설을 위해서도 절실한 전제 조건이 된다.

노 대통령은 이와 관련,"(김 위원장이) 평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갖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이번에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소개했다.

북핵의 경우 김 위원장은 1992년 발표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준수를 재확인하는 한편 북핵 6자회담의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약속하는 수준에서 언급했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 간 기본적인 군축 문제는 1992년 발효된 남북 기본합의서에 명시돼 있다.

당시 남북은 추후 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해 △대규모 부대 이동과 군사연습의 통보·통제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적 이용 △군 인사교류 및 정보 교환 △대량살상무기(WMD)와 공격 능력의 제거 △단계적 군축 실현 및 검증 등의 문제를 협의,추진키로 했었다.

노 대통령은 이 중 DMZ의 평화적 이용 방안을 제시하고 휴전선 155마일에 걸쳐 설치돼 있는 남북한 GP(최전방 초소)와 병력,중화기 등을 단계적으로 후방으로 철수하는 문제를 김 위원장과 협의했다.

군비증강 경쟁을 지양하고 재래식 전력의 감축 협의를 위한 상설 기구를 설치 및 운영하는 방안도 얘기했다.

김 위원장은 다만 서해북방한계선(NLL) 재설정을 주장했고 노 대통령은 공동어로구역 설정 등으로 평화 수역화하자고 맞받았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