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남북정상회담은 구체적이고 다양한 합의내용만큼이나 풍성한 뒷얘기를 남겼다.

남북 협상대표단은 한 문장이라도 각자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막후에서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북측은 2000년 1차 정상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선(動線)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며 때로는 잘못된 정보를 흘리는 한편 우리 기자단의 근접 취재를 철저히 차단했다.

이 때문에 곳곳에서 밀고당기는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또 수행원들과 기자들은 정해진 일정과 동선 외에는 평양시내의 호텔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해 사실상 발이 묶였다.

49명이나 되는 특별수행원들은 빡빡한 일정과 예상치 못했던 일정 변경으로 육체적인 고충을 호소하기도 했다.

O…공동선언문에서 남북이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로 협력하기로 했다는 문구는 북측이 제기한 안이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 문안은 우리 측이 아닌 북측이 내놓은 안이었으며,우리 측은 이와 다른 문안을 준비했는데,노무현 대통령이 "북측 안이 좋다.

북측 것을 받아라"고 지시했다는 것.이와 관련,청와대 관계자는 "직접 관련당사국이라고 할 때 우리가 빠진다는 시각도 있을 수 있는 데다 대통령이 북측 안이 더 좋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O…노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정상회담의 정례화와 관련,김 위원장이 회담 과정에서 "친척집에 갈 때도 정례적으로 가느냐"는 농담성 발언을 던지며 '수시로'라는 표현을 넣자고 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의 정상회담 정례화 제의에 대해 "친척집에 갈 때 정례적으로 가느냐.친척집에는 수시로 만나면 되는 것이다.

정례화는 국가 간의 관계에서는 적합할지 모르지만,남북의 특수관계에서 정례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수시로 만난다는 것이 정례화라는 표현보다 강도가 떨어지지 않다"면서 "보다 더 적극적인 만남을 얘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O…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한 대기업 대표들은 경협에 대한 대규모 투자 여부에 언론의 관심이 쏠리면서 방북 기간 내내 국내 언론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기자들과의 접촉도 가능한 한 피하고,질문에 대해서는 아주 원론적인 답변으로 비켜갔다.

한 대기업 회장은 방북단에 참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몸만 따라가는 거지"라고 말했고,또 다른 회장은 "분위기만 보는 것이다.

돈이 돼야 사업을 하는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다만 최태원 SK 회장은 "북측에도 미래가 있다.

지금 그것을 생각 중이다.

북한이 개발이 덜 됐다고 하지만 역발상을 하면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했다.

한편 대기업 회장을 비롯한 특별수행원은 이번 회담 기간 중 수행원 없이 전 일정을 혼자 소화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직접 가방을 들고 회의장이나 행사장으로 옮겨 다녀야 했고,북측 사정에 따라 시도 때도 없이 자주 바뀌는 일정을 직접 챙기느라 애를 먹었다.

O…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인터넷 등 기술적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더라"고 평가,눈길을 끌었다.

평소 인터넷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진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과의 회담 과정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업무 편의를 위해 인터넷 개통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하자 "나도 인터넷 전문가다.

공단 안에서만 통하면 되는데 북한의 다른 지역까지 연결돼서는 문제가 많다.

그 문제가 해결되면 (개성공단에 인터넷을) 못 열어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 마지막 날인 4일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개성공단에 들러 입주기업 대표들과 만나 이같이 전했다.

평양에서 기자를 안내한 북측의 한 관계자도 "평양 인민대학습당의 경우 김 위원장 지시로 정보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고 말해 김 위원장이 IT(정보기술)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