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 분석] 세계경제 운명 좌우할 美주택시장…서브프라임發 쇼크 일단 진정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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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속락땐 신용위기보다 치명적
미국 주택경기가 골치다.
관련 지표는 악화일로다.
집을 팔려는 사람은 안 팔려 애가 탄다.
건설업체들은 일감이 없어 난리다.
그러다보니 관련 업종에서 쫓겨난 사람도 늘고 있다.
소비가 둔화되는 조짐도 역력하다.
여기저기서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세계 경제의 운명은 미국 주택경기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집값 폭락으로 세계 경제는 자칫하면 1929년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가 하면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주택경기 침체로 미국 경제가 침체(recession)에 빠질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문제는 회복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주택경기 침체가 내년이나 내후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집값이 얼마나 빠질지는 예측불허다.
◆주택 관련 지표 일제히 곤두박질
재미 교포인 김모씨는 얼마 전 앞마당에 11개월째 꽂혀 있던 팻말을 뺐다.
다름아닌 '집 팝니다(For Sale)'란 팻말이다.
집이 팔려서가 아니다.
집 팔기를 포기해서다.
김씨가 집을 산 것은 3년 전인 2004년 7월.처음 3년 동안 싼 금리가 적용되는 모기지(ARM)를 활용해 집값의 80%를 빌렸다.
모기지 부담이 적어 어느 정도 오르면 팔 요량이었다.
처음 1년은 기세 좋게 올랐다.
그러나 웬걸,2005년 들어서자 오름세가 주춤해지더니만 작년 하반기부터는 약간 내림세다.
그래서 본전이라도 건질 생각으로 집을 내놨다.
사는 건 맘대로 샀어도 파는 건 맘대로 안 됐다.
매입 가격에다 매매 과정의 수수료(집값의 약 10%)를 더한 값에 집을 내놓았지만 별무효과.처음엔 그래도 입질은 있었다.
연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파문이 터지자 입질마저 자취를 감췄다.
지난 여름 모기지 금리가 변동금리로 바뀌면서 부담은 커졌다.
고민 끝에 월세(rent)로 돌리기로 하고 팻말을 뽑았다.
미 주택경기는 2000년부터 2005년까지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이 기간 중 전국 평균 집값 상승률은 70%.2005년 여름을 정점으로 하향세로 돌변했다.
올 들어서는 집값이 야금야금 내리더니만 평균 4%가량 하락했다.
매물은 쌓이고 매수세는 자취를 감추는 게 당연했다.
더욱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문으로 가압류 주택이 매물로 쏟아져 어려움은 가중됐다.
이런 상황은 지표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8월 기존주택 판매실적은 5년 만에,신규주택 판매실적은 7년 만에 모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매매 계약이 진행 중인 주택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8월 잠정주택지수도 6년 만에,주택경기의 선행지표 역할을 하는 주택착공 실적도 12년 만에 최저치로 하락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케이스-실러 주택지수'는 지난 2분기 중 3.2% 하락해 16년 만에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모든 주택 관련 지표가 곤두박질을 치고 있는 셈이다.
◆'마이너스 부의 효과'로 소비 위축
경제에서 신용위기는 무섭다.
경제의 핏줄이라는 돈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부를 도려내고 수술을 하면 극복이 가능하다.
지난 8월 최악의 신용위기에 빠졌던 금융시장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FRB가 유동성 공급과 금리 인하란 처방을 내린 덕분이다.
주택경기는 다르다.
일단 침체에 빠지면 살려내는 데 시간이 걸린다.
더욱이 주택경기는 소비 및 고용과 직결돼 있다.
집값 하락에 따른 '역(逆)부의 효과(reverse wealth effect)'는 소비심리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에서는 '홈에퀴티론(home equity loan)'이 유행이다.
집값이 오른 만큼 쓸 수 있는 한도가 늘어나는 대출이다.
집값이 내리면 문제다. 빚을 갚아야 한다. 당장 현찰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갚지 못하면 집을 압류당한다. 그런 집이 올해만 80만채에 달할 것을 감안하면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산술적으로도 그렇다.
현재 미국 주택 자산가치는 23조달러에 달한다.
집값이 10%만 내려도 2조3000억달러가 날아간다.
다른 부분에서 충당되지 않는 한 소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컨퍼런스보드의 9월 소비자신뢰지수는 99.8로 2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타깃 등 대형 유통업체들은 벌써 실적 둔화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소비는 미국 경제성장에서 70%를 차지한다.
소비가 둔화되면 경제에 치명적이다.
주택경기 침체를 근거로 경제성장률이 2분기 연속 뒷걸음질치는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이유다.
뿐만 아니다.
집이 팔리지 않으면 집을 짓지 않는다.
주택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일자리를 잃는 건 당연지사.주택 건설재료를 만드는 업종도 쉬어야 한다.
모기지 등 관련 업종도 파리가 날릴 수밖에 없다.
이는 감원으로 이어져 고용 불안을 야기한다.
모기지 관련 업종 종사자 중 이미 1만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실업자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른다.
특히 미국 전체 일자리 8개 중 1개는 주택업종과 관련돼 있다.
이러다보니 주택경기 침체로 줄잡아 10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고용 불안은 소비 둔화로 이어지고 결국 경제에 주름살을 드리울 수밖에 없다.
주택경기 침체가 신용위기보다 더 무서운 이유다.
◆갈수록 커지는 부정적 전망
주택경기가 좋지 않다고 해도 속도가 더디면 그래도 괜찮다.
금방 회복되지 않더라도 더 이상 나빠지지 않으면 불행 중 다행이다.
아직은 양호한 기업 실적과 달러 약세에 따른 수출 호조 등이 경기가 침체로 빠지는 걸 방지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침체 진행 속도가 빠르고 침체의 골이 깊어지며 기간이 길어지면 얘기는 달라진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소비가 둔화되면 제아무리 미국 경제라도 배길 재간이 없다.
불행히도 시간이 지날수록 부정적 전망이 많아지는 추세다.
그린스펀은 "집값 하락률이 두 자릿수를 넘어설 수도 있으며 경기침체 가능성이 50%에 육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초부터 주택경기 경계론을 펴고 있는 실러 교수는 "미국 집값은 내년에 10%가량 하락하고 3~4년 동안 20%가량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가 하면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는 기존주택 판매실적이 내년 2분기부터나 감소세를 멈출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최대 국책 모기지 회사인 패니매는 2009년이나 돼야 주택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다.
무디스도 "주택경기 침체가 2009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열쇠는 역시 FRB가 쥐고 있다.
기준금리를 내리면 많은 문제가 해소된다.
모기지 금리가 떨어져 소비심리도 회복될 수 있다.
금리 인하라는 말만 나와도 시장참가자들이 열광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9·11테러 당시처럼 기준금리를 연 1.0%까지 인하해야 (현재 연 4.75%)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디플레이션을 다른 무엇보다 우려해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해서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이 붙은 벤 버냉키 FRB 의장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다.
뉴욕증시가 고공행진을 하는 것을 보면 아직 경기에 대한 믿음이나 버냉키 의장에 대한 신뢰가 커 보인다. 그렇지만 바람과 현실은 괴리가 있다. 주택경기의 바닥이 과연 어딘지,바닥까지 떨어지는 것을 FRB가 막을 힘이 있을지 세계 경제가 주목하고 있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
미국 주택경기가 골치다.
관련 지표는 악화일로다.
집을 팔려는 사람은 안 팔려 애가 탄다.
건설업체들은 일감이 없어 난리다.
그러다보니 관련 업종에서 쫓겨난 사람도 늘고 있다.
소비가 둔화되는 조짐도 역력하다.
여기저기서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세계 경제의 운명은 미국 주택경기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집값 폭락으로 세계 경제는 자칫하면 1929년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가 하면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주택경기 침체로 미국 경제가 침체(recession)에 빠질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문제는 회복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주택경기 침체가 내년이나 내후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집값이 얼마나 빠질지는 예측불허다.
◆주택 관련 지표 일제히 곤두박질
재미 교포인 김모씨는 얼마 전 앞마당에 11개월째 꽂혀 있던 팻말을 뺐다.
다름아닌 '집 팝니다(For Sale)'란 팻말이다.
집이 팔려서가 아니다.
집 팔기를 포기해서다.
김씨가 집을 산 것은 3년 전인 2004년 7월.처음 3년 동안 싼 금리가 적용되는 모기지(ARM)를 활용해 집값의 80%를 빌렸다.
모기지 부담이 적어 어느 정도 오르면 팔 요량이었다.
처음 1년은 기세 좋게 올랐다.
그러나 웬걸,2005년 들어서자 오름세가 주춤해지더니만 작년 하반기부터는 약간 내림세다.
그래서 본전이라도 건질 생각으로 집을 내놨다.
사는 건 맘대로 샀어도 파는 건 맘대로 안 됐다.
매입 가격에다 매매 과정의 수수료(집값의 약 10%)를 더한 값에 집을 내놓았지만 별무효과.처음엔 그래도 입질은 있었다.
연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파문이 터지자 입질마저 자취를 감췄다.
지난 여름 모기지 금리가 변동금리로 바뀌면서 부담은 커졌다.
고민 끝에 월세(rent)로 돌리기로 하고 팻말을 뽑았다.
미 주택경기는 2000년부터 2005년까지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이 기간 중 전국 평균 집값 상승률은 70%.2005년 여름을 정점으로 하향세로 돌변했다.
올 들어서는 집값이 야금야금 내리더니만 평균 4%가량 하락했다.
매물은 쌓이고 매수세는 자취를 감추는 게 당연했다.
더욱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문으로 가압류 주택이 매물로 쏟아져 어려움은 가중됐다.
이런 상황은 지표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8월 기존주택 판매실적은 5년 만에,신규주택 판매실적은 7년 만에 모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매매 계약이 진행 중인 주택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8월 잠정주택지수도 6년 만에,주택경기의 선행지표 역할을 하는 주택착공 실적도 12년 만에 최저치로 하락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케이스-실러 주택지수'는 지난 2분기 중 3.2% 하락해 16년 만에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모든 주택 관련 지표가 곤두박질을 치고 있는 셈이다.
◆'마이너스 부의 효과'로 소비 위축
경제에서 신용위기는 무섭다.
경제의 핏줄이라는 돈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부를 도려내고 수술을 하면 극복이 가능하다.
지난 8월 최악의 신용위기에 빠졌던 금융시장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FRB가 유동성 공급과 금리 인하란 처방을 내린 덕분이다.
주택경기는 다르다.
일단 침체에 빠지면 살려내는 데 시간이 걸린다.
더욱이 주택경기는 소비 및 고용과 직결돼 있다.
집값 하락에 따른 '역(逆)부의 효과(reverse wealth effect)'는 소비심리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에서는 '홈에퀴티론(home equity loan)'이 유행이다.
집값이 오른 만큼 쓸 수 있는 한도가 늘어나는 대출이다.
집값이 내리면 문제다. 빚을 갚아야 한다. 당장 현찰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갚지 못하면 집을 압류당한다. 그런 집이 올해만 80만채에 달할 것을 감안하면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산술적으로도 그렇다.
현재 미국 주택 자산가치는 23조달러에 달한다.
집값이 10%만 내려도 2조3000억달러가 날아간다.
다른 부분에서 충당되지 않는 한 소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컨퍼런스보드의 9월 소비자신뢰지수는 99.8로 2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타깃 등 대형 유통업체들은 벌써 실적 둔화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소비는 미국 경제성장에서 70%를 차지한다.
소비가 둔화되면 경제에 치명적이다.
주택경기 침체를 근거로 경제성장률이 2분기 연속 뒷걸음질치는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이유다.
뿐만 아니다.
집이 팔리지 않으면 집을 짓지 않는다.
주택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일자리를 잃는 건 당연지사.주택 건설재료를 만드는 업종도 쉬어야 한다.
모기지 등 관련 업종도 파리가 날릴 수밖에 없다.
이는 감원으로 이어져 고용 불안을 야기한다.
모기지 관련 업종 종사자 중 이미 1만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실업자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른다.
특히 미국 전체 일자리 8개 중 1개는 주택업종과 관련돼 있다.
이러다보니 주택경기 침체로 줄잡아 10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고용 불안은 소비 둔화로 이어지고 결국 경제에 주름살을 드리울 수밖에 없다.
주택경기 침체가 신용위기보다 더 무서운 이유다.
◆갈수록 커지는 부정적 전망
주택경기가 좋지 않다고 해도 속도가 더디면 그래도 괜찮다.
금방 회복되지 않더라도 더 이상 나빠지지 않으면 불행 중 다행이다.
아직은 양호한 기업 실적과 달러 약세에 따른 수출 호조 등이 경기가 침체로 빠지는 걸 방지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침체 진행 속도가 빠르고 침체의 골이 깊어지며 기간이 길어지면 얘기는 달라진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소비가 둔화되면 제아무리 미국 경제라도 배길 재간이 없다.
불행히도 시간이 지날수록 부정적 전망이 많아지는 추세다.
그린스펀은 "집값 하락률이 두 자릿수를 넘어설 수도 있으며 경기침체 가능성이 50%에 육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초부터 주택경기 경계론을 펴고 있는 실러 교수는 "미국 집값은 내년에 10%가량 하락하고 3~4년 동안 20%가량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가 하면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는 기존주택 판매실적이 내년 2분기부터나 감소세를 멈출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최대 국책 모기지 회사인 패니매는 2009년이나 돼야 주택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다.
무디스도 "주택경기 침체가 2009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열쇠는 역시 FRB가 쥐고 있다.
기준금리를 내리면 많은 문제가 해소된다.
모기지 금리가 떨어져 소비심리도 회복될 수 있다.
금리 인하라는 말만 나와도 시장참가자들이 열광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9·11테러 당시처럼 기준금리를 연 1.0%까지 인하해야 (현재 연 4.75%)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디플레이션을 다른 무엇보다 우려해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해서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이 붙은 벤 버냉키 FRB 의장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다.
뉴욕증시가 고공행진을 하는 것을 보면 아직 경기에 대한 믿음이나 버냉키 의장에 대한 신뢰가 커 보인다. 그렇지만 바람과 현실은 괴리가 있다. 주택경기의 바닥이 과연 어딘지,바닥까지 떨어지는 것을 FRB가 막을 힘이 있을지 세계 경제가 주목하고 있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