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노무현 때문'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주말에 비가 내려도,퍼팅한 볼이 홀컵을 외면해도,배탈이 나도 다 '노무현 때문'이라고 했다.

누군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라고 하면 "몰랐어? 노무현 때문이야"라고 답하는 식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으로선 억울하기 짝이 없겠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노 대통령만큼 억울한 사람들이 있다.

PC방 업주들이다.

걸핏하면 'PC방 때문'이라고 몰기 때문이다.

최근 한 서바이벌 게임장에서 초등학생이 머리를 다쳐 뇌사 상태에 빠진 사고가 발생했다.

왜? PC방 때문에.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PC방 때문에 운동이 부족한 아이를 서바이벌 게임장에 보냈다가 사고가 났다는 논리다.

지난해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 파문이 터진 뒤에는 PC방은 '만악의 근원'으로 여겨졌다.

문제를 일으킨 곳은 게임장과 성인PC방이었으나 사람들은 "또 PC방이야?"라고 했다.

차제에 PC방을 없애자는 말까지 나왔다.

PC방 업주들은 바다이야기 사태와 무관하다고 설명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불똥은 온라인게임으로 번졌다.

온라인게임 업계마저 비난을 받았다.

어느 업체 사장은 음식점에서 "저 사람 감옥 가지 않았어?"라고 숙덕이는 소리를 들었다.

온라인게임을 성장산업으로 키우겠다던 정부의 의지는 이 와중에 싸늘하게 식어갔다.

PC방에 대한 비난은 규제 강화로 이어졌다.

정부는 올 들어 게임산업진흥법을 고쳐 PC방을 자유업종에서 등록업종으로 변경했다.

11월17일까지 등록해야 PC방 사업을 계속 할 수 있게 했다.

또 1종근린생활시설에서는 PC방 사업을 하지 못하게 했고 2종근린생활시설에서는 매장 면적이 150㎡(45평)를 초과하지 못하게 했다.

이대로 시행한다면 전국 2만2000여개 PC방 중 6000여개가 당장 문을 닫거나 이전해야 한다.

나머지 PC방도 기준에 맞춰 주차장 승강기 등을 확충해야 한다.

서울 신림동에서 8년째 PC방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꼬박꼬박 세금 내면서 매장을 키워놨는데 어느날 갑자기 불법이라며 문을 닫으라고 하니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PC방 업주들은 급기야 이달 중 집단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대선 직전에 시끄러워지게 됐다.

이에 정부와 국회는 PC방 등록제 시행시기를 늦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법을 고친 것은 사행성 게임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PC방과 온라인게임 시장에 미칠 파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예상치 않은 문제가 불거지고 말았다.

따지고 보면 PC방이라고 잘한 것은 없다.

대한민국 학부모치고 PC방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출 청소년이 기거하는 곳도 PC방이고 해킹이나 원조교제를 위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곳도 PC방이다.

강력한 규제를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잘잘못을 떠나 시장에 큰 충격을 주는 조치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와 국회는 이번엔 이런 저런 사정을 충분히 감안해 최선책을 내놓길 바란다.

PC방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

"PC방 덕분에 인터넷 강국이 됐다"는 말은 약발이 끝난 지 오래다.

다같이 노력해 '만악의 근원'이란 말은 더이상 듣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김광현 IT부장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