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들의 법정관리 신청이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4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통합도산법)' 도입 이후 기존 경영진이 관리인을 맡으면서부터다.

특히 최근 의류업체 나산이 8년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한 데 이어 대한통운의 인수·합병(M&A)이 임박하면서 법정관리 기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8일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따르면 올들어 8월 말까지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은 총 16곳.2005년에는 3건에 불과했지만 통합도산법이 도입된 2006년 신청건수가 19건으로 크게 늘었고 올해도 20여개의 기업이 법정관리를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들 법정관리 기업의 관리인은 대부분 기존 경영진으로 채워지고 있다.

통합도산법상의 '기존 관리인 유지제도'(DIP)가 연착륙하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 중 하나다.

'기존 관리인 유지제도'란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의 기존 경영자를 법정관리 관리인으로 임명하는 제도.부실 경영에 대해 지나치게 큰 잘못을 경영자가 저지르지 않은 한 그 기업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경영진을 통해 회사를 회생시키고자 도입한 제도다.

이를 통해 부실기업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의 오민석 판사는 "기업 경영자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경영권을 빼앗기는 것이 두려워 재무구조가 극도로 악화할 때까지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것을 꺼렸지만 기존 관리인 유지제도를 통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조기에 자발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한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통합도산법 이전에는 동종 업체에서 임원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중 경총 등에서 법정관리 절차에 대해 교육을 받은 사람을 법원이 관리인으로 선정했었다.

2004년과 2005년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16개 회사 모두 제3자가 관리인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해당 기업에 대해 잘 모르는 법정관리인이 위기관리를 제대로 하겠느냐는 지적과 또 회사에 애착이 없는 법정관리인이 회생보다는 기업을 다른 곳에 팔아먹기 바쁘다는 문제 제기가 있어 기존 관리인 유지제도가 도입됐다.

실제로 동해펄프의 법정관리인이었던 유모씨의 경우 회사를 인수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부탁과 함께 인수 업체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존 경영자가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도덕적 해이를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법무법인 광장의이은재 변호사는 "많지는 않지만 기업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경영자도 있다"고 강조했다.

박민제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