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8일 신청사 디자인을 확정하기까지의 과정은 말 그대로 우여곡절이었다.

시청 바로 뒤편에 지어질 신청사는 문화재(사적 제124호)로 지정돼 있는 덕수궁과 가깝다는 이유로 문화재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건축허가 문제에서만큼은 남에게 머리를 숙여본 적이 없는 서울시인지라 문화재위원회를 너무 쉽게 본 탓일까.

시는 지난해 6월 최초 계획안을 수립한 이후 4차례나 신청사 디자인을 수정해야 했다.

최초로 제시했던 항아리형에서부터 휘몰아치는 태극 문양(두 차례 제시),건물을 세 겹으로 쌓아올린 샌드위치 모양 등은 덕수궁을 사랑(?)하는 위원들의 낙점을 받지 못했다.

결국 신청사 디자인은 그야말로 밋밋한 '성냥갑' 형태로 결정됐다.

더이상 성냥갑 아파트는 없다던 서울시가 성냥갑 청사를 짓게 된 아이러니에 서울시는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고색창연'한 문화재위원들 덕분에 시간낭비 돈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면서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문화재위원회가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서울시의 불만을 놓고 일각에서는 '제 눈의 들보는 못보는 격'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내 각종 건축물의 건축허가를 담당하는 시 건축위원회가 문화재위원회와 다를 게 뭐냐는 얘기다.

서울시가 시행 중인 새로운 디자인 가이드라인으로 인해 재건축 재개발 등 아파트사업의 건축허가가 최근 줄줄이 보류되면서 이들 사업에는 디자인 비상이 걸렸다.

문제는 건축심의에 있어서 위원들의 주관이 강하게 개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어렵게 건축허가를 받은 모 재건축 아파트 조합 관계자는 "심의 때마다 다른 위원들을 만나 똑같은 얘기를 해야 함은 물론 디자인 개선과 관련한 주문사항도 오락가락해 5차례나 건축안을 수정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현재 디자인총괄본부 차원에서 종합적이고 세부적인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시가 과연 문화재위원회에 호되게 당한 이번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제 눈의 들보를 빼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호기 사회부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