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납치 피해자는 더이상 없다." 이 한 마디에 일본이 충격을 받았다.

남북정상회담 때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했던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지난 8일 서울 외신클럽에서 전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말이다.

문 교수는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피랍자 문제와 관련해 그런 말을 한 것으로 정부 당국자로부터 들었다고 외신기자들에게 밝혔다.

일본 언론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8일 오후부터 NHK 등 주요 방송은 서울발 속보로 이 소식을 전했고, 9일 요미우리 등 신문도 1면 등에 일제히 주요기사로 다뤘다.

북·일 간의 넘을 수 없는 시각차를 재확인한 것으로 관계개선 전망이 불투명해졌다는 논조다.

북한은 2002년 북·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피랍자는 13명으로 그중 8명은 사망했다"며 나머지 5명만 일본으로 돌려 보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납치 피해자가 17명이라고 주장한다.

이 논란 때문에 지난 수년간 북·일 관계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북핵문제가 6자회담에서 풀리고 남북정상회담으로 화해무드가 조성되자 북·일 관계도 진전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일본에서 고개를 들었던 게 사실이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취임 초부터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에게 피랍자 문제를 포함한 일본과의 현안 해결 필요성을 제기했고, 김 위원장도 기대감을 갖고 후쿠다 내각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는 한국 정부의 공식 설명에 일본 정부의 기대도 컸다.

한데 김 위원장이 '더이상 납치 피해자는 없다'고 못박았다면 일본 입장에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고 볼 수 있다.

문 교수 전언의 진실 여부는 불투명하다.

그는 남북정상회담에 배석하지도 않았다.

마침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일본 정계에 설명하기 위해 방일한 배기선 국회 통일특별위원회 위원장(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주일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문 교수는 사실을 전하는 것보다 해설을 하는 데 능한 사람"이라며 문 교수 전언을 우회적으로 부정했다.

진실이 무엇이든 남북정상회담 내용에 대한 수행원들의 단편적 전언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 '큰 일'을 그르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든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