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시스템 이대론 안된다] (下) 검사땐 '칼날' 세우고 제재는 '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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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위원회는 지난 5월25일 경북상호저축은행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하고 6개월간 영업정지 명령을 내렸다.
전격적인 조치였다.
예금 인출이 불가능해진 고객들은 "멀쩡하게 영업하던 저축은행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부실화돼 영업정지를 당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경북저축은행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곪아터진 상태였다.
2006년 말 자기자본비율(BIS)은 -33.96%였다.
금감원의 지도비율인 5%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금융당국도 이미 오래 전에 '적기시정조치(경영개선권고·요구·명령)'를 내렸다.
다만 공표를 안했을 뿐이다.
감독당국 관계자는 "저축은행은 수신규모가 적어 적기시정조치를 공개하면 예금이탈로 경영개선의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소비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부실금융기관에 돈을 맡긴 꼴이 된다.
이 과정에서 부실은 커졌고 소비자 피해도 늘어났다.
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는 "적기시정조치를 받더라도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저축은행들이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영업하는데 별 다른 지장이 없는 만큼 대주주가 증자 등 자본확충에 적극 나서지 않고 버틴다는 것.그러다보니 회생하는 경우는 드물고,영업정지까지 가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다.
저축은행 업계에 유난히 '카더라 괴담'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BIS 5% 미만으로 적기시정조치를 받은 저축은행이 몇 곳인데,조만간 문을 닫을 것"이란 루머다.
이 역시 금융당국이 각종 제재조치를 '쉬쉬' 하고 있는 데 따른 부작용일 수 있다.
금감위와 금감원이 올해 금융회사를 제재한 건수는 모두 91건이다.
은행 9건,증권·자산운용 32건,보험 9건,저축은행 등 비은행 44건 등이다.
이 가운데 금융당국이 언론에 공개한 건수는 미국계 에이스화재(영업 일부정지) 등 2~3건에 불과하다.
여신규정을 위반해 기관경고를 받은 시중은행,리베이트를 지급하다 적발된 생보사,임원 횡령으로 기관경고를 받은 저축은행 등이 다수 있었지만 금융당국은 발표하지 않고 덮었다.
다만 이 같은 제재정보는 서너 달 후 금감원 홈페이지에서 공시되지만 사용자들이 일일이 검색정보를 넣어야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잘못을 바로잡으면 되지 언론에까지 알려 금융회사의 이미지를 나쁘게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매달 두 차례 열리는 금감위 정례회의의 의결안건도 사실상 '비공개 원칙'이다.
물론 인허가와 사업양수도 등 일부 안건은 언론에 공개하지만 금융회사 검사결과와 그에 따른 조치는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금융감독행정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금감위가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는 바람에 금감원이 쥐고 있는 각종 금융시장 통계도 '대외비'다.
심지어 금융당국 내 국·실 간에서도 정보공유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밀실감독'이 금융회사의 부실을 키우고 금융시장의 안정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외국계 금융사 관계자는 "미국 등 선진 금융감독기구들은 위법을 저지른 금융회사에 대해 일벌백계 차원에서 강력한 제재를 하고 그 결과를 소비자들에게 낱낱이 공개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금융당국은 평상시 또는 검사시기에는 호랑이처럼 행동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즉 제재조치를 내릴 때는 '쉬쉬' 하면서 '솜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고강도 검사가 솜방망이 처벌로 수위가 낮아지는데는 각종 인맥과 로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금융회사에 포진해 있는 금감원 출신 감사들이 핵심 연결고리다.
금감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1년 이후 금감원에서 퇴직한 2급 이상의 고위직 141명 가운데 83명이 금융회사에 감사 등으로 재취업했다.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시중은행의 한 부행장은 "은행 스스로 금감원 국장 출신을 감사후보 1순위로 꼽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성이 뛰어난 데다 로비스트 역할도 해주기 때문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래일 수 있다.
하지만 금융회사가 금감원 출신을 감사로 스카우트하는 게 아니라 금감원의 간부인사 구도에 맞춰 '할당제'로 이뤄지는 게 다반사다.
영입하기 싫은 사람도 떠밀려 받아야 하고,이 과정에서 금감원과 피검회사 간 제재 형량을 놓고 밀실흥정이 이뤄지기도 한다.
솜방망이 처벌과 관련,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회사가 사업인가를 받아 상품을 신고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감독당국의 사전 규제 및 감독이 선진국에 비해 매우 까다로운 것도 또 다른 원인"이라고 전했다.
사전규제가 워낙 심하기 때문에 사후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감독당국은 그동안 뭐하고 있었느냐'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만큼 금융당국 스스로 제재 강도를 낮추는 측면도 있다는 설명이다.
진입과 영업에 대한 사전 규제는 대폭 풀어주되,사후에 위법사례가 적발될 경우에는 금융시장에 다시 발을 붙이지 못할 정도의 고강도 제재를 내리는 방식으로 감독시스템을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를 위해선 정보공개를 확대하는 등 밀실감독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
전격적인 조치였다.
예금 인출이 불가능해진 고객들은 "멀쩡하게 영업하던 저축은행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부실화돼 영업정지를 당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경북저축은행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곪아터진 상태였다.
2006년 말 자기자본비율(BIS)은 -33.96%였다.
금감원의 지도비율인 5%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금융당국도 이미 오래 전에 '적기시정조치(경영개선권고·요구·명령)'를 내렸다.
다만 공표를 안했을 뿐이다.
감독당국 관계자는 "저축은행은 수신규모가 적어 적기시정조치를 공개하면 예금이탈로 경영개선의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소비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부실금융기관에 돈을 맡긴 꼴이 된다.
이 과정에서 부실은 커졌고 소비자 피해도 늘어났다.
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는 "적기시정조치를 받더라도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저축은행들이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영업하는데 별 다른 지장이 없는 만큼 대주주가 증자 등 자본확충에 적극 나서지 않고 버틴다는 것.그러다보니 회생하는 경우는 드물고,영업정지까지 가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다.
저축은행 업계에 유난히 '카더라 괴담'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BIS 5% 미만으로 적기시정조치를 받은 저축은행이 몇 곳인데,조만간 문을 닫을 것"이란 루머다.
이 역시 금융당국이 각종 제재조치를 '쉬쉬' 하고 있는 데 따른 부작용일 수 있다.
금감위와 금감원이 올해 금융회사를 제재한 건수는 모두 91건이다.
은행 9건,증권·자산운용 32건,보험 9건,저축은행 등 비은행 44건 등이다.
이 가운데 금융당국이 언론에 공개한 건수는 미국계 에이스화재(영업 일부정지) 등 2~3건에 불과하다.
여신규정을 위반해 기관경고를 받은 시중은행,리베이트를 지급하다 적발된 생보사,임원 횡령으로 기관경고를 받은 저축은행 등이 다수 있었지만 금융당국은 발표하지 않고 덮었다.
다만 이 같은 제재정보는 서너 달 후 금감원 홈페이지에서 공시되지만 사용자들이 일일이 검색정보를 넣어야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잘못을 바로잡으면 되지 언론에까지 알려 금융회사의 이미지를 나쁘게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매달 두 차례 열리는 금감위 정례회의의 의결안건도 사실상 '비공개 원칙'이다.
물론 인허가와 사업양수도 등 일부 안건은 언론에 공개하지만 금융회사 검사결과와 그에 따른 조치는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금융감독행정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금감위가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는 바람에 금감원이 쥐고 있는 각종 금융시장 통계도 '대외비'다.
심지어 금융당국 내 국·실 간에서도 정보공유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밀실감독'이 금융회사의 부실을 키우고 금융시장의 안정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외국계 금융사 관계자는 "미국 등 선진 금융감독기구들은 위법을 저지른 금융회사에 대해 일벌백계 차원에서 강력한 제재를 하고 그 결과를 소비자들에게 낱낱이 공개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금융당국은 평상시 또는 검사시기에는 호랑이처럼 행동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즉 제재조치를 내릴 때는 '쉬쉬' 하면서 '솜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고강도 검사가 솜방망이 처벌로 수위가 낮아지는데는 각종 인맥과 로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금융회사에 포진해 있는 금감원 출신 감사들이 핵심 연결고리다.
금감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1년 이후 금감원에서 퇴직한 2급 이상의 고위직 141명 가운데 83명이 금융회사에 감사 등으로 재취업했다.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시중은행의 한 부행장은 "은행 스스로 금감원 국장 출신을 감사후보 1순위로 꼽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성이 뛰어난 데다 로비스트 역할도 해주기 때문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래일 수 있다.
하지만 금융회사가 금감원 출신을 감사로 스카우트하는 게 아니라 금감원의 간부인사 구도에 맞춰 '할당제'로 이뤄지는 게 다반사다.
영입하기 싫은 사람도 떠밀려 받아야 하고,이 과정에서 금감원과 피검회사 간 제재 형량을 놓고 밀실흥정이 이뤄지기도 한다.
솜방망이 처벌과 관련,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회사가 사업인가를 받아 상품을 신고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감독당국의 사전 규제 및 감독이 선진국에 비해 매우 까다로운 것도 또 다른 원인"이라고 전했다.
사전규제가 워낙 심하기 때문에 사후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감독당국은 그동안 뭐하고 있었느냐'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만큼 금융당국 스스로 제재 강도를 낮추는 측면도 있다는 설명이다.
진입과 영업에 대한 사전 규제는 대폭 풀어주되,사후에 위법사례가 적발될 경우에는 금융시장에 다시 발을 붙이지 못할 정도의 고강도 제재를 내리는 방식으로 감독시스템을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를 위해선 정보공개를 확대하는 등 밀실감독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