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고객을 한 명 더 확보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기존 고객을 유지하는 것도 아주 어려운 일이다.
한 번 놓치면 피해도 크다.
만족한 고객이 기껏해야 3명에게 그 사실을 전하는 반면 한 번이라도 불만족한 고객은 9명에게 험담을 전한다는 통계도 있다.
고객이 떠나는 이유는 많다.
사소하게는 품질이나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렇다.
이건 그래도 노력하면 막을 수 있다.
문제는 우리 회사나 우리 업종이 아니라 전혀 다른 업종으로 떠나는 경우다.
더 나은 가치를 찾아서 아예 '종족 이동'을 해 버린다.
지금은 구경조차 어려워진 삐삐(페이저)를 생각해 보자.휴대폰이 등장한 뒤 고객이 모두 떠났다.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기능이 우수해도,가격이 저렴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삐삐에만 전력투구한 회사를 기다리는 건 비극적 종말뿐이다.
TV가 처음 나왔을 때 할리우드의 영화업자들이 딱 그랬다.
TV를 자기와 관련된 업(業)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들은 '영화 제작업'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작은 영화'인 TV 쪽에는 관심도 없었다.
만화 영화가 나왔을 때도 그런 식으로 눈을 뜨고 놓쳤다.
고객이 TV로,만화 영화로 몰려가고 있는데도 더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만 관심을 보였다.
영화 제작업자들이 스스로의 업을 '엔터테인먼트'라고 규정했었다면 어땠을까.
누구보다도 나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장악했을 것이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특히나 요즘처럼 기술과 매체가 발달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한 업종의 최고가 되는 것만으로는 이 고객을 잡기도,유지하기도 어렵다.
업종의 경계를 넘나들며,게임의 규칙을 스스로 바꿔가며 비즈니스 모델을 진화시키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소위 '업의 정의'가 중요한 대목이고 이것이 비즈니스 발달의 논리다.
고객이 떠나는 조짐이 보이면 경영자들은 기존 업의 성공 규칙이 바뀐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고객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업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우리 상품을 더 이상 이용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그쪽으로 몰려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을 우리가 대신해 주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이런 고민을 주기적으로,그리고 체계적으로 해 나갈 때 우리 업종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고 지금은 고객이 아닌 사람,즉 비(非)고객까지 흡수할 수 있는 혁신의 길이 새롭게 열리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도 "사업을 하면서 처음부터,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물어야 할 것은 우리의 사업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물음은 비즈니스가 아닌 곳에서도 아주 유용하다.
고객이 떠나고 있는 곳이면 모두 해당된다.
정치에 침을 뱉는 사람,'신이 내린 직장'에 손가락질을 하는 시민,교육을 위해 나라 밖에서 대안을 찾는 국민들이 분명히 있고 또 늘어나고 있다.
정치도 공공 부문도 그리고 나라도 '업의 정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작년보다 이만큼 나아졌다'는 식의 자랑은 공치사가 되고 시대착오적이라는 욕만 먹는 것이다.
하기야 고객이 떠나는 이유를 생각할 여유가 있을지,과연 인정이나 할는지.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