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컬렉션 참가차 출국하면서 올해도 어김없이 공항 세관에 통사정했습니다.

패션쇼 때문에 짐이 많은 거니까 일일이 풀어보는 일만은 없게 해달라고요.

연예인이나 국가 대표 운동 선수들 짐이었다면 아마 안 그랬겠죠.전 세계 디자이너들의 경합장인 파리컬렉션에 참가하는 우리도 한국 대표 선수 아닌가요?"

조성경 디자이너(38)의 말 속엔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억울함과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파리컬렉션은 루이비통,샤넬,베르사체 등 전 세계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몰려드는 세계 최대 규모의 패션 행사.조 디자이너는 이상봉 문영희 우영미 정욱준씨 등 4명과 함께 지난 8일 폐막한 2008년 SS(봄·여름) 패션쇼에 참가했다.

이번이 네 번째다.

"올해 남성복의 정욱준씨가 신인으로 소개돼 한 명 늘었습니다.

하지만 13명의 디자이너를 보낸 일본에 비하면 아직도 열악한 수준이죠."

조 디자이너는 특히 중국이 조만간 '카피(copy) 대국'이란 오명을 벗고 세계 패션계를 휘어잡을 날이 머지 않았다고 내다봤다.

"중국의 추격이 무섭습니다.

이번엔 처음으로 한 명을 보냈지만 내년이면 또 달라질 거예요.

각국 언론사를 위해 마련한 좌석 수도 작년과 달리 올해는 중국이 한국보다 많았어요.

패션 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까지 발벗고 나섰으니까요."

그러나 한국 정부는 말만 무성할 뿐 늘 구체적인 실천이 없다고 한다.

특히 '국가대표급 디자이너'에 대한 지원조차 열악하기 그지없다고 꼬집었다.

"파리컬렉션에 참가하려면 2억원 안팎의 돈이 필요합니다.

정부 지원은 1000만원 남짓으로 스태프 비행기값 정도예요.

샤넬 같은 브랜드들은 몇 억원짜리 모델을 쓰지만 우리는 200만원짜리 신인 모델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대형 트렁크 15개에 짐을 싣고 프랑스에 가서 저와 스태프 5명이 악전고투해야 했습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