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 플러시 패를 쥐고 있는 기분입니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88)은 11일 포커 게임에서 최고의 패를 쥐었을 때의 느낌에 빗대 노벨상을 받은 기쁨을 표현했다.

런던 북부의 자택 밖에서 기자들과 만난 레싱은 "유럽의 모든 상들을 다 받았다.

모두 엄청난 상들.이 모든 상을 받아 기쁘다.

전부 다…이건 로열 플러시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적으로 좌파이자 격렬한 페미니스트인 동시에 열렬한 반전 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현실적인 문제를 비현실적인 상황과 캐릭터 설정에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품들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통해 대중의 인기를 얻는 데 성공했고,현실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으로 평단의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스웨덴 한림원은 11일 레싱에 대해 "회의와 통찰력으로 분열된 문명을 응시한,여성으로서의 경험을 그린 서사 작가"라고 평가했다.

레싱은 이란에서 태어나 1949년까지 약 25년을 지금의 짐바브웨 지역인 로디지아 지방에서 지냈다.

그 때까지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다음 1949년 영국 런던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이 사이에 몇 편의 단편소설과 시들을 발표했지만 주목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런던으로 이주했을 때는 그의 마음이 피폐해진 상태였다.

레싱은 이런 마음의 고달픔을 글쓰기에 담아내면서 치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치유 방법은 내면 들여다보기가 아니라 세상 바깥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가 1950년 발표한 '풀잎은 노래한다'에서는 백인 농부의 아내와 흑인 하인의 간통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로디지아 지방의 지배민족과 원주민의 갈등을 드러냈다.

그는 시,희곡,장·단편 소설을 포함한 많은 작품을 발표하면서 1950년대의 대표적인 '앵그리 영맨'으로 활동했다.

레싱은 한동안 개인의 내면 의식을 다룬 작품을 펴낸 적도 있다.

1971년 발표한 '지옥행 안내'에서는 이성의 통제를 넘어서 잠재적 의식을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 그는 다시 외부의 현실로 눈을 돌리게 된다.

특히 1988년작 '다섯째 아이'는 돌연변이 아이에 대한 가족들의 비인간적인 행위를 통해 인류의 전통적인 가치관이 갖는 허점을 꼬집었다.

국내에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번역돼 나온 이 작품은 인종차별,페미니즘 등의 일반적인 사회운동에서 벗어나 좀 더 대범한 현실 인식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여든을 갓 넘긴 2000년에 '다섯째 아이'의 속편인 '벤,세상 속에서'를 냈다.

가정에서조차 받아들여지지 못한 벤이 사회로 나왔을 때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작품이다.

집을 나와 배회하다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으면서 소설이 끝난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현대 문명에 대한 고통과 분노를 강렬하게 표현했다.

올해에도 그는 '더 클레프트'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여자들만 사는 신비한 세계에 남자들이 들어왔을 때 생기는 일들을 상상한 사이언스 픽션이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