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 분석] M&A의 마지막 관문, 反독점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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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체제로서 '군주제'를 원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에서도 '독점'을 바라지 않는다."
1890년 미국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이었던 존 셔먼이 의회에서 한 말이다. 소수 기업의 과도한 시장 지배력은 반드시 소비자 피해로 귀결된다는 논리다. 그의 신념은 의회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미국의 독점금지법,일명 셔먼법은 이렇게 탄생했다. '반독점' 논리는 국경을 넘어 공명(共鳴)을 일으켰다. 각국에서 비슷한 법안이 속속 등장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반독점법을 도입한 나라는 모두 82개. 올해부터 중국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독점금지법은 기업 간 인수·합병(M&A)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적지 않은 '빅딜'이 이 법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초했다. 덩치 큰 대기업들이 한 살림을 차리겠다고 발표할 때마다 필연적으로 독과점 문제가 야기됐기 때문이다.
2001년 제너럴일렉트릭(GE)과 하니웰의 합병이 무산된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당시 잭 웰치 GE 회장은 하니웰과의 합병을 '은퇴 작품'으로 생각했다. 420억달러짜리 초대형 M&A를 성사시킨 뒤 화려하게 40년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려 했다. 출발은 순탄했다. 두 회사의 이사회는 모두 합병에 우호적이었다. GE의 제트엔진 제조 부문과 하니웰의 항공전자,금융 등이 연계될 경우 상당한 시너지(상승)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그러나 '법전'에서 복병이 튀어나왔다. 미 법무부로부터 독점금지법 위반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GE가 한발 물러섰다. 헬리콥터 엔진 부문을 매각해 몸집을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GE의 '성의 표시'가 미 법무부에는 먹혀들었다. 그러나 사고는 바다 건너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거품을 문 것이다. 두 회사가 합쳐질 경우 시장점유율이 지나치게 높아져 유럽 항공기 시장의 가격 상승이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22억달러 규모의 하니웰 자산을 추가 매각하겠다고 설득했지만 EU는 꿈쩍하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까지 나서 EU의 협조를 부탁했지만 결국 합병 불가 판정이 내려졌다. '20세기 최고 경영자'로 칭송받던 잭 웰치도 독점금지법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그리고 예정보다 몇 달 앞당겨 조기 은퇴했다.
M&A 사상 최대 규모(1290억달러)로 큰 관심을 모았던 월드컴과 스프린트 간 합병 시도도 셔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 내 2,3위 장거리전화 회사였던 월드컴과 스프린트는 1999년 서로 힘을 합치기로 뜻을 모았다. 이번엔 미 법무부와 EU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두 회사의 국제전화 분야 시장점유율이 30%를 넘고 인터넷 접속 서비스 분야는 52%에 달한다는 점이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합병이 성사될 경우 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고 요금은 올라갈 것이라는 우려가 비등했다. 미 법무부는 반독점법 위반 소송을 제기했고 EU는 합병 불가를 결의했다. 결국 2000년 6월 월드컴과 스프린트는 합병 승인 신청을 철회했다. 다음 해인 2001년에는 유나이티드항공과 US에어웨이 간 합병 시도가 미 법무부의 반대로 물거품이 됐다.
오라클도 반독점법 때문에 큰 홍역을 치렀다. 오라클은 2003년 6월 소프트웨어 경쟁사였던 피플소프트에 주당 16달러의 가격으로 공개 인수를 제안했다. 당시 기업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수위를 달리던 독일 SAP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피플소프트는 오라클의 적대적 인수 제안을 뿌리치기 위해 반독점법 위반 소송을 제기했다.
인수작업은 그 자리에서 올스톱됐다. 비슷한 시기에 EU도 반독점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오라클은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존재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IBM 등 정보기술(IT) 업계의 공룡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이 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는 것이 주요 논거였다. 공방은 15개월간 지루하게 이어졌다. 마침내 오라클이 승리하긴 했지만 그 사이 인수금액은 주당 26.5달러로 올라버렸다. 최초 제안 가격보다 66%나 비싼 가격을 치르고 겨우 피플소프트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보잉 역시 미 법무부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미국 내 3개 항공사와 체결한 알토란 같은 장기독점계약을 포기하는 아픔을 겪고 나서야 맥도널더글러스와 합칠 수 있었다. 휴렛팩커드(HP)와 컴팩 간 250억달러짜리 대형 M&A도 수차례 위기를 넘겼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1890년 미국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이었던 존 셔먼이 의회에서 한 말이다. 소수 기업의 과도한 시장 지배력은 반드시 소비자 피해로 귀결된다는 논리다. 그의 신념은 의회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미국의 독점금지법,일명 셔먼법은 이렇게 탄생했다. '반독점' 논리는 국경을 넘어 공명(共鳴)을 일으켰다. 각국에서 비슷한 법안이 속속 등장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반독점법을 도입한 나라는 모두 82개. 올해부터 중국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독점금지법은 기업 간 인수·합병(M&A)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적지 않은 '빅딜'이 이 법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초했다. 덩치 큰 대기업들이 한 살림을 차리겠다고 발표할 때마다 필연적으로 독과점 문제가 야기됐기 때문이다.
2001년 제너럴일렉트릭(GE)과 하니웰의 합병이 무산된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당시 잭 웰치 GE 회장은 하니웰과의 합병을 '은퇴 작품'으로 생각했다. 420억달러짜리 초대형 M&A를 성사시킨 뒤 화려하게 40년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려 했다. 출발은 순탄했다. 두 회사의 이사회는 모두 합병에 우호적이었다. GE의 제트엔진 제조 부문과 하니웰의 항공전자,금융 등이 연계될 경우 상당한 시너지(상승)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그러나 '법전'에서 복병이 튀어나왔다. 미 법무부로부터 독점금지법 위반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GE가 한발 물러섰다. 헬리콥터 엔진 부문을 매각해 몸집을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GE의 '성의 표시'가 미 법무부에는 먹혀들었다. 그러나 사고는 바다 건너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거품을 문 것이다. 두 회사가 합쳐질 경우 시장점유율이 지나치게 높아져 유럽 항공기 시장의 가격 상승이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22억달러 규모의 하니웰 자산을 추가 매각하겠다고 설득했지만 EU는 꿈쩍하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까지 나서 EU의 협조를 부탁했지만 결국 합병 불가 판정이 내려졌다. '20세기 최고 경영자'로 칭송받던 잭 웰치도 독점금지법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그리고 예정보다 몇 달 앞당겨 조기 은퇴했다.
M&A 사상 최대 규모(1290억달러)로 큰 관심을 모았던 월드컴과 스프린트 간 합병 시도도 셔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 내 2,3위 장거리전화 회사였던 월드컴과 스프린트는 1999년 서로 힘을 합치기로 뜻을 모았다. 이번엔 미 법무부와 EU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두 회사의 국제전화 분야 시장점유율이 30%를 넘고 인터넷 접속 서비스 분야는 52%에 달한다는 점이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합병이 성사될 경우 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고 요금은 올라갈 것이라는 우려가 비등했다. 미 법무부는 반독점법 위반 소송을 제기했고 EU는 합병 불가를 결의했다. 결국 2000년 6월 월드컴과 스프린트는 합병 승인 신청을 철회했다. 다음 해인 2001년에는 유나이티드항공과 US에어웨이 간 합병 시도가 미 법무부의 반대로 물거품이 됐다.
오라클도 반독점법 때문에 큰 홍역을 치렀다. 오라클은 2003년 6월 소프트웨어 경쟁사였던 피플소프트에 주당 16달러의 가격으로 공개 인수를 제안했다. 당시 기업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수위를 달리던 독일 SAP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피플소프트는 오라클의 적대적 인수 제안을 뿌리치기 위해 반독점법 위반 소송을 제기했다.
인수작업은 그 자리에서 올스톱됐다. 비슷한 시기에 EU도 반독점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오라클은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존재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IBM 등 정보기술(IT) 업계의 공룡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이 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는 것이 주요 논거였다. 공방은 15개월간 지루하게 이어졌다. 마침내 오라클이 승리하긴 했지만 그 사이 인수금액은 주당 26.5달러로 올라버렸다. 최초 제안 가격보다 66%나 비싼 가격을 치르고 겨우 피플소프트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보잉 역시 미 법무부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미국 내 3개 항공사와 체결한 알토란 같은 장기독점계약을 포기하는 아픔을 겪고 나서야 맥도널더글러스와 합칠 수 있었다. 휴렛팩커드(HP)와 컴팩 간 250억달러짜리 대형 M&A도 수차례 위기를 넘겼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