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다가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종이가 없을 때,거래처와의 계약 내용을 종이가 아닌 디지털 파일로 남기고 싶을 때….펜 속에 정보가 저장되는 쿼드(QUAD)를 사용하면 당신의 역사를 영원히 간직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 삼성' 상상력을 그렸다 ... 삼성디자인학교 제품디자인학과 1회 졸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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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삼성디자인학교(SADI)에서는 2005년 신설된 제품디자인학과 1회 졸업생들의 졸업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10명의 졸업생이 33점의 작품을 출품한 가운데 1등상을 받은 남정균씨가 자신이 고안한 디지털 만년필 제품의 우수성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남씨의 작품은 앞부분에 잉크 대신 거리와 가속도를 감지할 수 있는 센서를 부착해 어떤 재질 위에 쓴 글씨나 그림도 디지털 정보로 기억하도록 고안된 펜.뒷부분에는 GPS모듈이 달려있어 기록 당시의 장소와 시간도 자동으로 저장된다.

이런 정보들은 블루투스를 통해 PC로 전송할 수 있다.

'디자인 삼성' 상상력을 그렸다 ... 삼성디자인학교 제품디자인학과 1회 졸업전
남씨는 이 아이디어를 세계적인 만년필 제조업체인 '몽블랑'에 제안해볼 생각이다.

삼성전자가 설립해 운영하는 SADI는 이날 10명의 새내기 제품 디자이너들을 처음으로 배출했다.

이들의 대부분은 대학에서 디자인과는 먼 학과를 전공했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작품에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기발한 상상력이 묻어 있었다.

전시회에 참석한 강윤제 삼성전자 디자인센터 상무는 "멋이나 기교가 아니라 본질적인 접근을 한 작품들이 많았다"며 "이들에게서 삼성은 물론 국내 제품 디자인의 또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새내기 디자이너들의 작품이라고 해서 시장과 경제성을 무시한, 뜬구름 잡는 식의 아이디어는 아니다.

소비자들의 니즈(needs)에서 출발한 아이디어가 대부분이다.

'디자인 삼성' 상상력을 그렸다 ... 삼성디자인학교 제품디자인학과 1회 졸업전
예를 들어 삼성테크윈과 산학협력을 통해 만든 디지털카메라 '포토다이어리'는 뷰파인더에 뜬 사진 위에 바로 그림이나 글씨를 쓸 수 있게 한 제품이다.

카메라를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을 기록하는데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최근 특성에서 힌트를 얻었다.

문자메시지 작성에 어려움을 겪는 노년층 소비자들을 위해 돌기가 있는 패드에 손으로 글씨를 쓰도록 한 휴대폰,외장하드를 각각의 폴더로 나눠 원하는 정보만 빼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초콜릿 폴더 등도 무릎을 치게 했다.

박영춘 SADI 제품디자인학과장은 "지난 3년 동안 조형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시장조사,기획 능력 등 소비자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익히도록 하는데 많은 커리큘럼을 할애했다"며 "기대했던 것보다도 성과가 좋다"고 평가했다.

복잡한 기능에 의존하기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작품이 많았던 것도 특징이다.

△슬플 때 들으면 좋은 음악 등 기분에 맞는 음악을 제공하는 오디오 △가족 구성원 각자의 꽃에 보이스레코더를 장착해 얼굴을 맞대고 하기 어려운 말을 서로에게 남길 수 있도록 한 디지털 꽃병 등이 대표적인 '감성형 작품'들이다.

SADI 제품디자인학과 학생들의 신선한 아이디어는 이미 세계적으로도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독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컨셉트디자인 분야에서 이미 3개 작품이 수상했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아이디어에 착안,어린이들이 공격성을 안전하게 표출할 수 있도록 한 박상현씨의 '봉봉박서'는 레드닷 심사위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SADI는 삼성전자가 1995년에 설립한 3년제 디자인학교다.

정식 학위 코스는 아니다.

삼성전자가 운영 자금의 80%를 지원하며,한 학기 등록금은 300만원 정도.패션디자인,커뮤니케이션디자인,제품디자인 등 3개 학과가 있다.

학력 조건,내신 및 수능성적,미술 실기능력 테스트 등을 거치지 않고 창의력 테스트만을 통해 선발한다.

졸업 후 삼성계열사 입사에 특별한 혜택은 없다.

1년에 총 100여명의 신입생을 뽑지만 혹독한 프로그램 때문에 이중 절반 정도만 졸업한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