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전 일본 도쿄 북부 이케부쿠로의 선샤인시티 컨벤션홀.500여평의 홀이 검은색 정장을 차려 입은 남녀 대학생들로 꽉 들어찼다.

중국 한국 인도 등에서 유학온 외국인 학생들이다.

일본의 한 취업알선회사가 개최한 외국인 유학생 취업박람회장은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마쓰시타전기 등 42개 일본 기업이 참가한 박람회에 이날 하룻동안 입장한 외국인 학생만 3200여명.행사 주최 회사 관계자는 "최근 1~2년 사이엔 외국인 유학생 취업박람회만 열면 장사가 된다"며 "우수한 외국인 유학생을 확보하려는 일본 기업들이 늘면서 유학생들의 호응도 뜨겁다"고 말했다.

일본 기업들이 외국 인재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인구 감소와 단카이(團塊·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퇴직으로 인력난에 직면한 일본 기업들이 외국 인력을 수혈하는 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타깃은 주로 중국 한국 인도 동남아 출신들이다.

아시아계로 문화적 유사성이 있는 데다 상대적으로 싼 인건비로 활용할 수 있는 인재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인력난이 심각한 정보기술(IT) 분야의 우수 인력이 풍부하다는 점도 이들 나라가 매력적인 이유다.

NEC와 후지쓰 등 일본의 대형 전기·전자업체들은 앞으로 3년간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국적의 소프트웨어 개발인력을 1만명 이상 고용하기로 했다.

NEC는 외국인력 채용을 현재보다 2배로,후지쓰는 3배 이상으로 늘릴 예정이다.

그동안 외국인력 채용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일본 기업들의 태도가 확 바뀐 것이다.

인재 파견 회사인 파소나테크의 나가노 토루 이사는 "국내에서 필요 인력을 구하지 못해 외국 인력을 찾는 기업들이 많다"며 "올 여름부터 중국 다롄 등 동북부 지역에서 이공계 대학 졸업생을 모집해 자동차 전기업체 등에 파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내년부터 인도의 이공계 대학 졸업자도 모집할 계획이다.

기업들의 외국인력 채용이 늘면서 일본 내 외국인 타운도 늘고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인 도요타 본사와 주요 공장이 있는 도요타시 인근의 호미가오카는 주민 9000여명 중 절반이 넘는 5000여명이 브라질인이다.

도요타 공장에서 채용한 브라질 근로자들이 모여 살면서 아예 브라질 타운이 돼 버린 것.도쿄의 에도가와구에도 인도인 1000명이 모여사는 인디아 타운이 최근 생겼다.

대부분 일본의 IT벤처기업에서 일하는 인도인들이다.

이곳에 사는 인도인은 2000년 240여명에 불과했지만 6년 동안 4배 이상 늘었다.

일본 기업들이 외국인력 채용에 열심인 것은 국내 인력만으론 현장의 수요를 도저히 채울 수 없어서다.

일본은 출산율 저하로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올해부터는 '단카이'로 불리는 베이비붐 세대(1947∼1949년생)가 본격적으로 정년 퇴직을 맞는다.

경기가 회복되면서 인력 수요는 늘고 있는데 일할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인력난에 허덕이는 이유다.

특히 IT기업들의 사정이 심각하다.

일본정보서비스산업협회가 최근 일본의 주요 IT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응답기업의 84%가 기술 인력난을 호소했다.

시미즈 케이덴 히토쓰바시대 교수는 "버블(거품)경제 붕괴 후 대학도 기업도 모두 IT인력 양성에 소홀했다"며 "앞으로 5년간 일본의 IT기술인력은 15만명 정도가 부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따라 한국 중국 등에선 일본 IT기업에 취업하는 게 붐이 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지난해 산업인력공단을 통해 일본에 취업한 IT인력은 500명이 넘는다.

다른 경로까지 합치면 2003년 이후 일본에 취업한 IT인력은 수천명으로 추산된다.

일본 경제산업성 관계자는 "2003년 한국 정부와 IT자격 상호인증 양해각서를 체결해 한국의 자격증을 일본에서도 인정해 주고 있다"며 "한국의 우수 IT인력을 일본 기업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력난에 직면한 일본 기업들은 외국인력뿐 아니라 퇴직인력,아줌마 인력 등도 가리지 않고 있다.

도요타자동차는 올해 정년 퇴직하는 기능직 사원 1300명 중 700명을 다시 고용키로 했다.

사무직과 기술직 사원 400명도 본인이 희망하고 건강에 문제가 없으면 다시 입사시킬 예정이다.

이시카와현에 있는 섬유기계 제조업체인 쓰다고마공업은 앞으로 3년간 정년을 맞는 사원 100여명 중 희망자 전원을 재고용하기로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NTT와 NEC 등 126개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최근 조사한 결과,재고용제도를 도입한 기업은 전체의 93.6%에 달했다.

요즘 일본 기업들은 여성 인력 활용에도 적극적이다.

의류회사 월드는 대부분이 계약직 여성인 판매직 사원 5000여명을 최근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미즈호은행은 여직원들을 위해 주요 지점에 탁아소를 만들었고,니혼유니시스는 작년부터 어린 자녀를 둔 여직원들의 조기퇴근을 허용하고 있다.

여성인력을 한 명이라도 더 쓰기 위한 아이디어들이다.

미즈호은행 사쿠와 고조 인사팀장은 "일반 제조업과 달리 외국인력 활용에 한계가 있는 금융 등 서비스 업종은 여성인력 등의 활용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