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왕, 이번엔 가구왕에 도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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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서 슈퍼마켓업계 평정 이용대 회장…美동부 최대 가구매장 오픈
뉴욕 맨해튼의 델리(소형 슈퍼마켓)업계를 평정했던 재미동포가 미 동부지역에서 가장 큰 가구매장을 차려 화제를 모으고 있다.
주인공은 '퍼니처 플라자'의 이용대 회장(61).이 회장은 얼마 전까지 맨해튼에 30개의 델리를 운영하며 '델리왕'이란 별칭을 얻은 것으로 유명하다.
단순히 잡화를 팔던 델리의 개념을 꽃과 음료,샌드위치 등까지 파는 슈퍼마켓으로 변신시킨 주인공도 다름아닌 이 회장이다.
1979년 이민온 뒤 델리업에만 종사한 그는 2000년까지 맨해튼에만 30개의 델리를 차렸다.
그러나 2001년 9·11테러로 18개의 델리가 무너져 고비를 맞았다.
이후 부동산 개발로 눈을 돌리던 이 회장은 최근 맨해튼에서 30분 거리인 뉴욕주 나누엣이란 곳에 퍼니처 플라자란 가구매장을 냈다.
면적만 6600㎡(약 2000평).소파부터 침대 장식장 스탠드 그림까지 무려 5700여 종류가 전시돼 있다.
최신형부터 클래식까지,중저가부터 명품까지 없는 게 없는 가구백화점이다.
가구기업인 IKEA 매장을 뺨칠 정도로 미 동부지역에선 최대 규모다.
땅값을 제외한 가구 구입비만 400만달러(약 37억원)가 들었다.
유대인들이 꽉 잡고 있는 대형 가구판매업에 뛰어든 동양인은 이 회장이 처음이다.
그런 만큼 이 회장의 행보는 한인사회는 물론 가구업계에서도 주목 대상이다.
이 회장은 "맨해튼에서 델리를 개척할 때도 기득권 세력인 그리스인의 압박이 심했다"며 "벌써부터 유대인과 백인들의 견제가 심하지만 부지런함과 신속함이란 한국인의 특징을 무기로 이를 극복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그는 "조만간 맨해튼에도 전시장을 내는 것을 비롯 대형 매장을 동부지역에만 10개로 늘리겠다"며 "미 중산층에 인기 있는 가구인 애실리 대리점계약을 따낸 만큼 한국에도 진출하겠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동포사회에서 얼굴 없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드러내놓고 뭘 하는 걸 쑥스러워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가 3명의 자녀를 한국에서 입양해 일류대에 진학시키는 등 훌륭하게 키운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뉴욕과 뉴저지주의 한인유권자센터 등 한인단체에도 일정액을 기부하고 있다.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일한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라는 이 회장은 "가구업에서 멋지게 성공해 백인들처럼 자선재단을 세워 사회에 봉사하고 싶다"는 목표이자 소망을 갖고 있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
뉴욕 맨해튼의 델리(소형 슈퍼마켓)업계를 평정했던 재미동포가 미 동부지역에서 가장 큰 가구매장을 차려 화제를 모으고 있다.
주인공은 '퍼니처 플라자'의 이용대 회장(61).이 회장은 얼마 전까지 맨해튼에 30개의 델리를 운영하며 '델리왕'이란 별칭을 얻은 것으로 유명하다.
단순히 잡화를 팔던 델리의 개념을 꽃과 음료,샌드위치 등까지 파는 슈퍼마켓으로 변신시킨 주인공도 다름아닌 이 회장이다.
1979년 이민온 뒤 델리업에만 종사한 그는 2000년까지 맨해튼에만 30개의 델리를 차렸다.
그러나 2001년 9·11테러로 18개의 델리가 무너져 고비를 맞았다.
이후 부동산 개발로 눈을 돌리던 이 회장은 최근 맨해튼에서 30분 거리인 뉴욕주 나누엣이란 곳에 퍼니처 플라자란 가구매장을 냈다.
면적만 6600㎡(약 2000평).소파부터 침대 장식장 스탠드 그림까지 무려 5700여 종류가 전시돼 있다.
최신형부터 클래식까지,중저가부터 명품까지 없는 게 없는 가구백화점이다.
가구기업인 IKEA 매장을 뺨칠 정도로 미 동부지역에선 최대 규모다.
땅값을 제외한 가구 구입비만 400만달러(약 37억원)가 들었다.
유대인들이 꽉 잡고 있는 대형 가구판매업에 뛰어든 동양인은 이 회장이 처음이다.
그런 만큼 이 회장의 행보는 한인사회는 물론 가구업계에서도 주목 대상이다.
이 회장은 "맨해튼에서 델리를 개척할 때도 기득권 세력인 그리스인의 압박이 심했다"며 "벌써부터 유대인과 백인들의 견제가 심하지만 부지런함과 신속함이란 한국인의 특징을 무기로 이를 극복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그는 "조만간 맨해튼에도 전시장을 내는 것을 비롯 대형 매장을 동부지역에만 10개로 늘리겠다"며 "미 중산층에 인기 있는 가구인 애실리 대리점계약을 따낸 만큼 한국에도 진출하겠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동포사회에서 얼굴 없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드러내놓고 뭘 하는 걸 쑥스러워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가 3명의 자녀를 한국에서 입양해 일류대에 진학시키는 등 훌륭하게 키운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뉴욕과 뉴저지주의 한인유권자센터 등 한인단체에도 일정액을 기부하고 있다.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일한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라는 이 회장은 "가구업에서 멋지게 성공해 백인들처럼 자선재단을 세워 사회에 봉사하고 싶다"는 목표이자 소망을 갖고 있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