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 ‥ '단일화 카드'로 대권3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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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선의 이인제 의원이 16일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민주당은 이날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KINTEX)에서 대통령 후보자 지명대회를 열고 이 후보를 17대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로 공식 지명했다.
이로써 이 후보는 1997년과 2002년에 이어 세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서게 됐다.
이 후보는 10차례 지역 경선과 대의원 투표,여론조사 결과를 합산한 총 누적 득표에서 56.42%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김민석 후보(24.17%)를 큰 표차로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신국환 후보와 장상 후보는 각각 3,4위에 머물렀다.
이 후보는 수락연설에서 "중도개혁 정권의 탄생을 위해 국민의 뜻을 받들 것"이라며 "개혁세력의 단일 후보는 국민의 선택과 힘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고 말해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와의 단일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생 역정=충남 논산에서 소농의 4남2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난 이 후보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통일민주당 공천을 받아 40세의 젊은 나이에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3당 합당으로 민자당에 합류해 김영삼 정부 시절 초대 노동부 장관과 초대 민선 경기지사를 지냈다.
그는 1997년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이회창 후보에게 패한 뒤 탈당했다.
탈당 직후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15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강행해 500여만 표를 획득,3위를 차지하며 차기 주자로서의 잠재력을 보여줬다.
이듬해 그는 국민신당·국민회의 합당 절차를 거쳐 새천년민주당에 둥지를 틀었다.
동교동계의 막후 지원에 힘입어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대세론'을 앞세워 화려한 재기에 성공하는 듯 했으나 노무현 후보의 '노풍(盧風)'에 막혀 다시 쓴잔을 마셨다.
이후 그의 정치 행보는 탈당과 입당,복당의 연속이었다.
16대 대선 직전인 2002년 12월 민주당을 탈당,자민련에 합류했으며,올해 1월에는 국민중심당에 입당했다가 지난 5월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왔다.
이 후보는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탄탄한 조직력과 특유의 부지런함을 앞세워 경선 기간 내내 1위를 독주한 끝에 승리를 거머쥐었다.
◆주요 공약=이 후보는 △지식정보강국 △복지문화대국 △통일조국 건설의 3대 비전을 토대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지,집중된 권력을 의회와 지방에 나누는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정부제) 개헌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경제 정책으로는 일자리 창출과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 등을 골자로 하는 '신 경제정책,한반도 기적 프로젝트를 통한 경제강국 건설'을 제시했다.
또 햇볕정책 창조적 계승,남북 공동 북한개발원(NKDI) 설립 등을 통해 북한의 경제발전 자생력을 촉진하는 '생산적 햇볕정책'을 추진하고,개성공단과 강화도를 연결하는 '경제 해상 공동특구' 개발도 약속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
민주당은 이날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KINTEX)에서 대통령 후보자 지명대회를 열고 이 후보를 17대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로 공식 지명했다.
이로써 이 후보는 1997년과 2002년에 이어 세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서게 됐다.
이 후보는 10차례 지역 경선과 대의원 투표,여론조사 결과를 합산한 총 누적 득표에서 56.42%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김민석 후보(24.17%)를 큰 표차로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신국환 후보와 장상 후보는 각각 3,4위에 머물렀다.
이 후보는 수락연설에서 "중도개혁 정권의 탄생을 위해 국민의 뜻을 받들 것"이라며 "개혁세력의 단일 후보는 국민의 선택과 힘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고 말해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와의 단일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생 역정=충남 논산에서 소농의 4남2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난 이 후보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통일민주당 공천을 받아 40세의 젊은 나이에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3당 합당으로 민자당에 합류해 김영삼 정부 시절 초대 노동부 장관과 초대 민선 경기지사를 지냈다.
그는 1997년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이회창 후보에게 패한 뒤 탈당했다.
탈당 직후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15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강행해 500여만 표를 획득,3위를 차지하며 차기 주자로서의 잠재력을 보여줬다.
이듬해 그는 국민신당·국민회의 합당 절차를 거쳐 새천년민주당에 둥지를 틀었다.
동교동계의 막후 지원에 힘입어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대세론'을 앞세워 화려한 재기에 성공하는 듯 했으나 노무현 후보의 '노풍(盧風)'에 막혀 다시 쓴잔을 마셨다.
이후 그의 정치 행보는 탈당과 입당,복당의 연속이었다.
16대 대선 직전인 2002년 12월 민주당을 탈당,자민련에 합류했으며,올해 1월에는 국민중심당에 입당했다가 지난 5월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왔다.
이 후보는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탄탄한 조직력과 특유의 부지런함을 앞세워 경선 기간 내내 1위를 독주한 끝에 승리를 거머쥐었다.
◆주요 공약=이 후보는 △지식정보강국 △복지문화대국 △통일조국 건설의 3대 비전을 토대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지,집중된 권력을 의회와 지방에 나누는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정부제) 개헌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경제 정책으로는 일자리 창출과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 등을 골자로 하는 '신 경제정책,한반도 기적 프로젝트를 통한 경제강국 건설'을 제시했다.
또 햇볕정책 창조적 계승,남북 공동 북한개발원(NKDI) 설립 등을 통해 북한의 경제발전 자생력을 촉진하는 '생산적 햇볕정책'을 추진하고,개성공단과 강화도를 연결하는 '경제 해상 공동특구' 개발도 약속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