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물이 모자란 거 같아요.(라미·3년6개월)" "물이 모자란 게 아니란다.너희들이 장난감을 물통 속에 너무 많이 담가 놓으니까 물이 안보이는 거야.장난감을 몇 개만 빼보렴.그러면 물이 다시 보일거야."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전철로 20분 거리에 있는 IT클러스터 시스타사이언스시티 인근에 자리 잡은 프로휴세트유아학교(pre-school).오전 9시께 시벤(2년6개월)과 라미 남매는 유아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물놀이에 여념이 없었다.물이 모자란다는 아이들의 불평에 선생님은 그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줬다.바로 옆에서 또래 친구들은 선생님이 준비해준 캔버스 도화지 위에 그림물감으로 색칠을 하고 있었다.다른 몇몇 친구들은 세발 자전거를 타며 교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신입생'인 한 살짜리 몰린이 아직 학교 분위기에 적응 못해 칭얼대자 선생님이 안고 어른다.

오전 6시부터 시작되는 스웨덴 유아학교의 풍경은 한국의 유아원(보육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최소한 겉보기에는 그랬다.그러나 속을 들여다 보면 판이하게 달랐다.'풔스콜라'라고 불리는 스웨덴 유아학교는 취학 전 1세부터 6세까지의 아이들을 맡아 키우는 교육시설로 우리나라 유아원과 보육원 등의 기능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한국과 가장 큰 차이점은 스웨덴 유아학교의 관할 부처는 복지부가 아닌 교육부라는 것이다.평생교육 관점에서 유아교육은 교육의 첫 단계로 유아교육기관과 초등학교 교육이 서로 연계돼야 하고 두 기관의 교사들도 협력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돼 1996년 관할부처가 복지부에서 교육부로 이관됐다.

페르 덜베리 스웨덴국립교육청장은 "무슨 일이든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며 "국가가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가 차원에서 유아교육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라고 말했다.덜베리 청장은 "유아학교 교과과정은 교육부가 직접 관할해 수준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며 "유아학교 시설의 색채 재료 등까지 신경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교육부가 유아교육의 중점 정책 목표와 지침 및 재정적 기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를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스웨덴 교육 경쟁력은 이처럼 '에듀케어(Edu+Care)' 시스템에서 출발한다.유아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복지에 교육을 접목시킨 것.마이클 킨 호주 시드니테크놀로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이 논문에 따르면 유아원이나 유치원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경우 어린이들의 지능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즉 5세 때 지능지수(IQ)를 검사해 보면 고등학교를 제대로 마치고 대학에 갈 수 있는지를 미리 알 수 있다는 게 논문의 요지이다.

스웨덴도 유아교육정책을 통합한 후 그 효과는 톡톡히 보고 있다.한국인으로선 최고위 공무원직에 오른 황선준 스웨덴국립교육청 특수재정국장은 "실제 한 대학 연구팀이 3만명가량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유아학교에서 초·중학교,고등학교 등까지 추적 조사한 결과,사회성 함양은 물론 학교 성적까지 좋아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스웨덴 유아학교의 교육목표는 유아들의 창의력을 높이고 사회성을 키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또 이타적인 태도를 형성시킬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의사소통 능력을 발달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프로휴세트유아학교의 경우도 이 같은 교육목표에 따라 미술 음악 댄스 야외활동 등 다양한 교과과정을 마련하고 있다.특히 생활과 자연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도록 일주일에 한두 차례 반드시 근처 공원으로 야외수업을 위해 나들이간다.

유아학교는 대개 직장인 부모들을 위해 오전 6시부터 문을 열고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오전 10시45분께 오전 일과가 끝나면 11시 점심식사를 하고 11시30분부터 낮잠을 잔 후 오후 1시30분 오후 프로그램을 시작한다.낮잠을 자지 않으면 선생님과 별도 활동을 할 수 있다.

이곳에는 학생 52명을 위해 교사 15명이 근무하고 있다.교사 1명이 3~4명의 학생을 돌보고 있는 셈이다.영국 등 여타 유럽 국가와 비교해서도 교사 일인당 학생 수가 매우 적은 편이어서 양질의 교육이 가능하다.

이 학교 교사인 카리타 소더베리씨는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교육을 한다"며 "창의력 개발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학부모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다.시벤과 라미의 아버지인 이라크 출신 바셈 카쉬타우씨는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아이들을 맡기는데 비용도 그리 많지 않고 잘 보살펴 줘 아무 걱정 없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웨덴의 교육은 대학원까지 무상이지만 유아학교의 경우 일정의 비용을 받는다.부모의 소득에 따라 다르지만 첫째 아이를 맡길 경우 월 상한금액이 1260크로나(1크로나는 143원가량)이다.둘째 840크로나,셋째 420크로나로 둘째아이부터는 비용이 낮아진다.덜베리 청장은 "장기적으로는 무상으로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톡홀름(스웨덴)=김수찬 기자 ksc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