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같은 문제를 놓고도 경제학자들이 서로 견해가 다를 수 있는 것은 그 과학적 판단이나 가치관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경제학자들의 절대 다수가 동의하는 그런 명제들도 있다.

예를 들면 '주택임대료 규제는 주택의 수량과 품질의 저하를 가져온다(93%)''관세와 수입쿼터가 부과되면 대체로 경제적 후생수준이 낮아진다(93%)''과도한 재정적자는 국민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83%)''최저임금제가 시행되면 젊은 비숙련 근로자들의 실업률이 높아진다(79%)''배출권 거래제도는 배출량 상한 규제보다 우월한 방식이다(78%)' 등이 그런 것들이다. 괄호안 수치는 경제학자들의 동의비율인데 정치인들에게 물어보더라도 비슷한 지지가 나왔을까. 미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맨큐의 경제학 중 '인식 대(對) 현실'이란 제목으로 나오는 내용이다.

소위 반값 아파트가 실패했다는 비판이 나오자 청와대 대변인은 이를 여야 정치인 탓으로 돌렸다. 정치인의 속성을 몰랐다면 순진하기 짝이 없는 것이고,문제를 뻔히 알고 있었음에도 방치했다면 무책임한 일이다. 각 당 대선 후보들이 경제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표에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반값 아파트보다 더한 공약들도 마다하지 않을 태세다. 정신 차리고 따져보지 않으면 속아 넘어가기 십상이다.

어떤 후보는 성장의지를 과시하려는 듯 7%대의 성장률을 내세웠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5% 이하로 내려갔다는 게 대부분 경제학자들의 얘기이고 보면 무조건 높은 성장률을 제시한다고 점수를 줄 일은 절대 아니다. 솔직히 대선 후보들이 이렇게 성장률 수치를 꼭 내걸어야만 하는지 그 자체부터도 의문이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 가망이 없으면 누구처럼 '캠프에서 표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그렇게 말해버리고 말았지만…'하고 어물쩍 넘어갈 것이고, 반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달성하겠다고 나서기라도 하면 그 후유증이 엄청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 다른 후보는 '차별 없는 성장'을 말한다. 차별 있는 성장과 대비되는 말이지만 인류가 진화를 하고 성장을 해 온 가장 기본적인 공식은 다름아닌 '차별화→경쟁과 선택→확산'이었다. 차별적 보상 없이 성장이 과연 가능한가. 우리 사회를 20 대 80으로 나누어 80을 위한 정책을 펴겠다는 것도 냉정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20과 80이 완전히 분리된 경제라면 또 모를까, 경제는 20이 무너지면 80이 더욱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생태계처럼 얽혀있는 구조다.

또 어떤 후보는 '사람중심, 진짜경제'를 내세웠다. 그러면서 반의 반값 아파트 공약을 제시하고 있는 걸 보면 무엇을 진짜경제라고 하고, 무엇을 가짜경제라고 하는지 자세히 뜯어볼 일이다. 서민을 위한 경제를 하겠다는 후보들의 공약 역시 매한가지다.

대선후보 캠프마다 경제공약들을 그럴 듯하게 포장해 '○○○노믹스'라고 이름 붙이지만 그런 '-노믹스'들이 제대로 성공한 경우는 선진국에서도 드물다. 특히 이념, 선과 악의 가치기준을 들이대거나 귀가 번쩍 뜨일 정도로 거창한 거시적 목표를 내건 경우는 아예 제끼는 것이 좋다. 결국은 누가 경제의 본질,기본원리에 더 충실했느냐에서 성과가 갈렸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안현실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