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제약사 화이자의 고혈압 치료제 '노바스크'(5mg)는 지난해 한국에서 996억원(건강보험 청구액 기준)의 매출을 올렸다.노바스크의 국내 보험약가(건강보험공단에서 제약사에 주는 가격)는 1정당 524원.반면 한국보다 1인당 국민총소득이 2.8배 높은 스위스에서는 482원에 불과하다.한국의 고혈압 환자와 건강보험 가입자들이 져야 할 부담이 스위스보다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이처럼 국내에서 팔리는 다국적 제약사들의 의약품 상당수가 우리나라보다 소득 수준이 높은 선진국에 비해 비싼 가격에 팔리는 것으로 밝혀졌다.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장복심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은 지난해 국내 매출 상위 30개 의약품의 보험약가를 선진 7개국과 비교 분석한 결과 보험 약가가 이들 국가보다 높게 책정된 의약품이 13개 품목에 달했다고 17일 말했다.

화이자의 고지혈증 치료제 '리피토'(10mg)는 한국에서 보험약가가 1241원이지만 △일본 1172원 △프랑스 940원 △영국 1210원 등으로 한국보다 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이들 세 나라는 한국보다 1인당 국민총소득이 두 배가량 높다.

다국적제약사 사노피아벤티스의 직장암 치료제 '엘록사틴'(50mg)의 경우 한국은 42만8725원으로 △영국 31만152원 △이탈리아 37만639원 △독일 42만5339원 등과 비교해 최대 38%나 비쌌다.장 의원은 "정부가 약가 관리를 제대로 못해 일부 다국적제약사들이 한국 시장에서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민단체는 비싼 보험약가를 깎아달라며 정부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다.시민단체 건강세상네트워크는 폐암치료제 '이레사'를 파는 다국적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를 상대로 보건복지부에 '신약으로서의 혁신성이 부족해 약값을 내려야 한다'고 청구,인하 결정을 얻어냈다.아스트라제네카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시민단체편을 들어주고 다국적제약사의 '폭리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보험약가 관리를 책임지는 복지부는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복지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신약에 대한 보험약가는 선진 7개국의 평균 가격을 참조해서 결정해 왔다"며 "한국의 보험약가가 일부 국가보다 높은 경우는 있지만 선진 7개국의 평균 가격보다는 낮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변명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의견이 많다.건강세상네트워크 관계자는 "정부가 소득이 훨씬 높은 선진 7개국의 평균 가격을 기준으로 보험약가를 주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며 "한국은 보험약가를 워낙 높게 책정하기로 유명해 다국적제약사들은 신약이 나오면 한국에 우선 출시하고 이를 기준으로 다른 나라에서 약가를 협상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비싼 약가는 결국 소비자 부담을 가중시킬 뿐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키는 주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