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 시인ㆍ문학평론가 >


짧은 소매옷 아래로 드러난 팔뚝에 소름이 돋고 양칫물을 입에 무는데 이와 잇몸이 시려 달력을 보니 상강이 코앞이다.

상강 뒤엔 산간지방에 첫얼음이 얼고,삭풍과 함께 첫눈 소식도 따를 것이다.

가을 아침은 모든 깊이를 경멸하며 거부한다.

투명한 표면으로 이미 제 깊이를 이룬 까닭이다.

맑은 것들이 몰려온 이 아침,딸을 멀리 두고 혼자 사는 아비는 거울 앞에서 허연 수염을 깎는다.

밤새 자란 수염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표다.

가을 아침에 면도를 하며 애써 살아 있다는 증표를 지우는 일은 쓸쓸하면서도 기쁘다.

변덕스런 날씨와 구름들,비,우레와 더불어 나는 오래 묵은 새로움이다.

가랑비 가랑가랑 내리고 화단에 모란이 붉은 촉을 내밀고 비비추가 푸른 뿔처럼 땅거죽을 뚫고 싹을 내던 봄 가고,유난히도 지루하게 내리던 그 많은 비의 날들이 가고 나니,어느덧 가을이다.

입춘 무렵 대문에 써 붙인 '입춘대길(立春大吉)'이니 '건양다경(建陽多慶)'이니 하는 방은 낡아 찢기고,여름의 그 무성하던 풀들은 쇠락하여 누렇다.

시듦을 낙담할 일도 아니요,번성함도 마냥 기뻐할 만한 일은 아니다.

쇠락과 번영은 고정된 바가 없으니,굳이 제 처지를 낙담 삼을 일이 아니다.

낮엔 하늘의 청명함과 기후의 온후함을 찬탄하며 문득 도연명을 꺼내 읽었다.

'장공은 일찍이 한번 벼슬하였으나/한창 나이에 문득 세상과 맞지를 않았네./문을 닫아걸고 다시는 나가지 않아/평생토록 세속과 떨어져 살았다.

/중리가 넓은 못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자/고상한 기풍이 비로소 이곳에 있게 됐다.

'('술을 마시다')

고상한 기풍 없이 졸렬한 나도 세속과 떨어져 사는 건 장공과 닮았다.

나는 날마다 뭔가를 읽고 쓴다.

글을 써서 번 돈으로 국민연금과 의료보험료를 내고 쌀과 채소를 사며 조촐한 생계를 꾸린다.

벗들과 내왕을 끊은 채 그저 자고,쓰고 하는 단조로움 속에서 짐승 같이 살았다.

종일 한마디도 내뱉지 않고 지나는 날이 잦다.

봉쇄수도원에서 묵언을 수행의 수단으로 삼는 수행자들 같이 내 침묵이 고결하다고 할 수 없다.

내 안에는 늘 으르렁거리는 성난 개와 하품하는 개 두 마리가 있다.

세속에서 멀어지며 분노도 증오도 삭으니 내 안의 성난 개는 할 일이 없다.

나는 분노하지도 않으며 흐느끼지도 않으며,이 부박경조한 세상의 모든 사태를 조금 떨어져서 관조할 뿐이다.

늦은 오후에는 긴 팔 옷을 꺼내 입고 한강공원으로 산책을 나선다.

나는 양화대교에서 성산대교 사이의 한강공원이나 그 건너편 선유도 공원을 즐겨 걷는다.

강물은 늠름하게 넘실대고,저 국회의사당 돔 위 하늘에 셰이빙 크림처럼 하얀 구름이 떠 있다.

화단에는 황국(黃菊)이 노란꽃을 피웠는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늦둥이 딸처럼 어여쁘다.

그 옆으로 대싸리비,고구마밭,푸른 잔디밭이 주루룩 펼쳐져 있다.

나는 해가 있는 서쪽을 등지고 동쪽을 향하여 마사이족처럼 빠르게 걷는다.

강변북로의 자동차 소음이 거슬리긴 하지만,대기가 맑고 건조해서 쾌적하게 걷기에 맞춤하다.

이윽고 가슴과 등짝에 흐른 땀으로 속옷이 흠씬 젖는다.

간이매점에서 산 생수 한 병으로 목을 축이고 땀을 식히며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준다.

모이를 보고 달려든 비둘기들이 금세 50,60마리로 불어난다.

고고학자들이 선사시대 유물들의 연대를 방사성탄소의 양으로 측정하듯 내 안의 외로움을 측정하기 좋은 계절이 가을이다.

외롭다고 울부짖지 말라.생명은 늘 오래된 새로움이고, 외로움은 생명의 본질이다.

외로울 때야말로 너무 바빠 방치해두었던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고,잃어버린 생의 리듬과 휴식을 찾을 시간이다.

때로는 외로움이 사람을 강하고 독립적으로 만든다.

외로움을 견뎌라.그래도 힘들다면 강으로 나가라.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얼마나 괴로운지/나한테 토로하지 말라/(중략)/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당신이 직접/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황인숙의 '강' 중)

내일도 나는 한강변으로 산책을 나서고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