孫在英 <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장 >

요즘은 흔하지 않지만 거리의 뱀 장수들이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재주는 보통이 아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우선 흥겨운 쇼를 앞세운다.

청중이 어느 정도 모이면 숨은 건강 고민들을 족집게처럼 짚는다.

진단과 처방은 결국 양기(陽氣)가 부족해 모든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니 이를 보충해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원리지만,단순하기 때문에 더욱 손님을 잡아둘 수 있다.

뱀 장수는 어떤 과학적 증거에 의지해 약을 파는 것이 아니다.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어떤 묘한 원리가 나에게만은 작용할 거라는 요행심리에 크게 기대는 것이고 이 또한 효과적인 전략이다.

지난 몇 년간 주택과 관련해 고민이 많았던 우리 국민들에게 여러 뱀 장수들이 약을 팔았다.

부동산 세금 강화,분양원가 공개,후분양,공영개발,그리고 소위 반값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만병통치 효과만점인 처방들이 쏟아져 나왔다.

주택문제에 다급했던 정부는 그렇게 팔리는 약을 가리지 않고 사들였다.

그 처방들이 어떤 경로로 어떻게 문제를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변변한 논리나 경험적 증거도 없이 목소리 큰 사람들에 떠밀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강한 규제와 세제들을 도입했다.

주택이 마약이나 불법무기 수준의 규제아래 놓여 있다 보니,국민들의 많은 수가 세금(종합부동산세) 때문에 집을 팔아야 하지만 세금(양도소득세) 때문에 집을 팔 수 없는 상황에서 고민한다.

주택업체들은 몇 년간 새로운 구조와 평면,자재로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시켰지만 앞으로는 1998년 이전의 분양가 규제체제로 돌아가서 다시 성냥갑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

또 후분양이 본격화되면 그나마 명맥을 잇던 중소형 주택건설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새로 집을 분양 받은 사람들은 최고 10년까지 주거이전의 자유가 없다.

전국적으로 미분양 주택이 10만가구에 이르고 조만간 15만가구에 달할 것이란 전망 가운데,서울 강남지역의 재건축 시장은 여전히 압력밥솥에 불을 때고 있는 형상이다.

요행심리에 기댔던 무리한 정책들의 성적표가 하나씩 들어오고 있다.

최근 0. 1 대 1의 청약경쟁률을 보여 실패한 반값 아파트를 두고 청와대가 발뺌을 하는 것을 보며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하고 싶었든 하고 싶지 않았든 정부가 했던 모든 시책에 대해 이 사람들이 무한 책임을 질 것을 기대하면 무리인가?

물론 도대체가 말도 되지 않는 정책을 당론으로 채택해 밀어붙였던 한나라당도 무슨 이념과 정강(政綱)을 가진 집단인지 다시 보게 된다.

개인의 자유와 책임,그리고 시장에 대한 원론적인 믿음이 보수이념의 기초다.

기초를 망각하고 손님 끌기에만 골몰하여 한바탕 쇼를 벌인 집단을 무슨 정당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거리의 뱀 장사는 무익한 약을 팔아 행인들의 푼돈을 긁어내려 할 뿐이지만,주택정책의 뱀 장수들은 국민 주거생활에 두고 두고 해악을 미친다.

이번 대선에서도 후보들이 팔려고 하는 주택정책들에 대해 국민들이 유심히 따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특정 지역에 사는 부자들에 대한 한풀이 시각에서 주택을 보지 않고 경제문제로 보면 의외로 쉽게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다.

다소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토지와 자본만 있다면 주택은 얼마든지 생산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주택건설을 위해서든 주택구입을 위해서든 자금 공급이 충분한 현 상황에서는 집을 지을 적당한 토지를 찾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쓰지 않고 모셔만 두고 있는 토지를 활용하는 데는 약간의 용기와 정치력이 필요할 뿐이다.

중산층 이상을 위한 분양주택은 정부가 적시(適時)에 충분한 토지를 공급하는 데 매진하고 나머지는 시장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두어야 한다.

저소득층의 안정적 주거생활을 위해서는 임대주택 공급 등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

이 두 방향의 정책추진을 핵심으로 하고,그 외 많은 불필요한 시책들을 서서히 정리해 가는 것이 차기 정부의 임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