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원주민들과의 토지보상 협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혁신도시까지 착공식을 먼저 치르는 계획을 강행하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달 12일 제주 서귀포 혁신도시 착공식에서 "(혁신도시는) 제 임기 안에 첫 삽을 뜨고 말뚝을 박고 대못을 박아 버리고 싶다"고 밝힌 것에 맞춰 사업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민감한 시기에 노 대통령이 앞으로 예정된 혁신도시 착공행사에 직접 참석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대선용'이 아니냐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21일 건설교통부와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내달 강원 원주와 전북 전주 혁신도시 착공식을 가질 예정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보상 협의에도 착수하지 않은 상태여서 '졸속 사업'이 될 것이란 우려가 높다.

원주혁신도시는 감정평가 결과가 이달 말께나 나와 보상 협의도 빨라야 12월부터 가능해 보상에 앞서 착공식을 먼저 하는 기이한 모양새가 될 전망이다.

전주혁신도시는 이미 전체 면적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농촌진흥청 부지가 추가로 늘어나는 바람에 환경부로부터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받아야 할 처지다.

이로인해 전북도청마저 11월은커녕 연말까지도 착공이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실정이다.

충북 진천.음성 혁신도시는 지난 17일에야 겨우 토지보상에 들어가 보상률이 0.9%에 불과한데도 정부는 11월 착공식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11월 착공식이 예정돼 있는 광주.전남의 나주,대구,울산 혁신도시도 보상률이 7~17% 선에 그치고 있다.

이 가운데 대구와 울산은 원주민들이 보상가가 낮다며 반발하고 있어 보상률은 연말까지 가더라도 30∼40% 수준에 불과할 것이란 전망이어서 정부가 무리하게 연내 착공을 밀어붙이는 데 따른 상당한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정부가 보상이 끝나기는커녕 협의도 시작되지 않은 혁신도시의 착공식을 서두르는 것은 아주 이례적이다.

사정이 급한 신도시를 건설할 때도 보상률이 50% 안팎에 이른 뒤 착공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실제 서귀포와 경북 김천 혁신도시의 경우도 보상률이 50%를 넘겨 지난 9월 착공식을 가졌다.

보상률이 낮더라도 착공식을 갖는 것 자체는 법적인 문제가 없다.

실시계획 승인이 나면 착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땅주인들이 보상에 응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혁신도시의 착공을 서두르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포석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무리하게 연내 혁신도시 착공을 추진하는 것은 공사가 늦춰질 경우 차기 정부가 사업을 변경할 것을 우려,사업을 되돌리지 못하게 그야말로 '말뚝'을 박으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혁신도시는 정부가 국토균형발전을 내세우며 도로공사 한전 등 수도권 공공기관 124개를 2012년까지 10개 지방으로 강제로 이전시키는 사업이다.

김문권 기자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