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베이징에서 끝난 중국 공산당 제 17차 전국대표대회(17全大)에 참석했던 2200여명의 전국 대표들은 짬을 내 자금성등을 구경했다. 베이징은 베이징청(城)이라 불릴 정도로 성이 많다.

성은 권력의 상징이다. 무언가를 둘러싼 폐쇄적 느낌을 준다. 이번 전대에서 그 권력을 나눠 쥔 상하이는 반대로 바다와 강의 도시다.

물가의 모래밭을 뜻하는 탄(灘)을 붙여 상하이탄이라고도 한다.

탄은 확트인 개방적 느낌을 준다.

무역도시로 돈이 모인다.

상하이사람을 두고 베이징사람들은 '쫀쫀하게 돈만 안다'며 손가락질하고 상하이사람은 베이징사람을 '허풍쟁이'라고 싫어하는 것은 이런 정반대의 속성 때문인 듯 하다.

베이징과 상하이는 권력을 두고 오랫동안 대립해온 관계다.

마오쩌둥 사망을 전후해 쿠테타를 일으키려 했던 마오의 처 장칭등이 군사를 집결시킨 곳은 상하이 근처다.

장쩌민 시대에도 상하이방(상하이 출신 정치세력)과 소위 베이징방의 권력암투는 계속됐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에게 대들기까지 했던 천시퉁 당시 베이징시 당서기를 비롯한 베이징방은 대규모 부패사건을 계기로 상하이방에 의해 척결됐다.

승승장구하던 상하이방은 작년에 천량위 상하이시 당서기의 사회기금 유용사건으로 벼랑 끝에 몰렸다.

이처럼 권력다툼이 지속되는 와중에 열린 17전대는 호사가들에겐 엄청난 소재였다.

상하이방이 완전히 쫓겨날 것이라는 둥 누가 후계자가 된다는 둥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결과는 큰 '변동없음'이다.

후진타오 주석 집권 1기 때와 마찬가지로 각 계파의 안배에 따른 집단지도체제가 유지됐다.

그래서 일부에선 가장 재미 없는 전대라고 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뜯어보면 정말 큰 변화가 있었고,이것이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가 아닌가 생각된다.

중국 리더십이 변화하는 단초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번 전대는 카리스마를 가진 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절대권력의 정치'로 복귀하지 않고 집단적 지도체제를 유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후 주석의 직계들인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 출신 인사가 최고지도부인 상무위원회에 다수 진입하지 못한 것을 두고 후 주석의 실패라는 시각이 지배적이긴 하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집단지도체제가 굳어지고 이것이 정년이 없는 절대권력자를 중심으로 짜여진 전근대적 정치체제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타협과 양보를 통해 그림을 함께 그려나가는 정치가 시작된다는 의미다.

후계구도를 명확하게 하지 않은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덩샤오핑이 장쩌민과 후진타오를 후계자로 직접 지명했던 것과 이번 케이스는 확연히 구분된다.

일단 시진핑 상하이시 당서기가 리커창 랴오닝성 당서기보다 권력서열에서 앞서 후계자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하지만 도식적인 분석일 뿐이다.

오히려 카리스마를 더이상 허용하지 않는 중국의 정치환경 변화는 두 사람 사이에서 5년 후 차기 지도자 선정을 앞두고 긴 레이스가 시작됐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보면 중국의 리더십은 드러나진 않지만 속으로 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전대는 중국이 정치적으로 '작지만 큰' 발전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생각이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