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에 비하면 조용한 발표였다.

삼성전자는 이른바 '황의 법칙'이라 불리는 메모리 신(新)성장론을 올해도 어김없이 입증했지만 23일 신기술을 발표하는 기자간담회에는 주인공 황창규 사장이 빠져있었다.

장소도 지난해 서울 신라호텔에서 올해는 태평로 삼성 본관의 지하 회의실로 바뀌었다.

잔칫집 분위기였던 예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왜일까.

황창규 사장의 심경과 회사 내 입지 그리고 반도체 사업 전략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황 사장은 올해 누구보다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연초 D램 가격이 폭락하면서 반도체총괄이 극심한 실적 부진에 시달렸고,여름에는 기흥공장에 정전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새로운 공정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수율이 낮아져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강한 질책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되자 황 사장을 둘러싸고 온갖 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연말 인사에서 경질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황 사장은 황의 법칙을 올해로 8년째 입증해 내면서 그를 둘러싼 일각의 우려를 깨끗이 씻어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기자간담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던 황 사장이 서울 태평로클럽의 오찬 자리에 5분여간 깜짝 방문하기도 했다.

황 사장은 "개발 안 될 줄 알고 걱정 많이 하셨죠.그동안 많은 관심과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부단히 노력해 개발한 기술이며,낸드플래시 시장의 성장을 지속시키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황의 법칙'을 통해 황 사장은 수개월간의 침묵(일각에서는 이를 '황의 침묵'으로 부르기도 했다)을 깼다.

'황의 부활'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 이뤄졌다.

파워포인트를 동원해 직접 설명하던 예년과 달리 황 사장은 노출을 최소화했다.

황의 법칙을 이어가는 데에 과거와 같은 무게를 두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시장이 더 중요하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풀이했다.

실적 부진을 겪으면서 무조건 앞선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시장 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방향으로 반도체 사업 전략을 선회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황 사장이 지난 8월 기자들에게 "앞으로는 실적으로만 말하겠다"고 밝힌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또 다른 삼성 관계자는 "과거 삼성전자의 최대 효자였던 반도체가 지금은 실적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는 만큼 황 사장이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게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