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모르겠다."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 출석하기 위해 23일 국회에 온 한 기업의 대표이사 A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지난 18일 국정감사에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은 뒤 곧바로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는 공문을 받아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아무래도 나오는 게 신상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발단은 17일 정무위에서 증인 채택안이 통과되면서 시작됐다.

이날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BBK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에 대해 대통합민주신당은 관련 증인 채택을,한나라당은 결사반대를 외치며 육탄전까지 벌였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날치기'라며 거세게 반발했지만 국회 사무처는 정무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병석 신당 의원의 지시에 따라 증인들에게 국감 출석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같은 시간 한나라당도 증인 전원에게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증인 채택이 무효라는 소장 사본과 함께 "출석하지 않아도 고발조치 등은 없을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서도 첨부했다.

정치권에서 같은 날 날아온 상반된 내용의 공문을 들고 A씨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고 했다.

그는 "명색이 한 나라의 국감인데 당리당략에 따라 '손바닥 뒤집기'하듯 바뀌는 게 정말 한심해 보였다"며 "고발 안 할테니 오지 말라는 얘기는 마음에 들면 고발 안 하고 안 들면 한다는 말 아니냐.법을 만드는 의원들이 법을 '거지 발싸개'로 대하는 것"이라고 억한 심정을 쏟아냈다.

국회가 가진 권위를 감안해 한나라당의 만류에도 출석한 A씨는 그나마 다행스런 경우다.

신당 일각에서 "무단으로 출석하지 않은 증인에 대해서는 사법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초래한 혼란에 애꿎은 기업인들만 법적 책임을 져야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대선과 총선이 코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기업인들의 기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기업인들을 무더기로 국정감사에 불러놓은 뒤 별다른 설명도 없이 다시 돌려보내는 '기업인 국감 벌세우기'부터 없애야 하지 않을까.

노경목 정치부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