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야마 "北 사상변화 거부 … 신중하게 접근을"

미국 부시 행정부의 초기 외교정책에 초석을 놨던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와 내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국무장관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되는 리처드 홀브룩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퍼수스 LLC 부회장)가 24일 글로벌HR포럼에서 만나 '남북 정상회담과 동북아 평화 전망'이란 주제로 특별좌담회를 가졌다.

사회자는 윤영관 서울대 교수(전 외교부 장관).좌담회에서 후쿠야마 교수는 "최근 북핵 문제가 6자회담을 통해 진전이 있었으나 기존 핵무기 처리 등 아직 해결해야 할 게 많다"는 신중론을,홀브룩 전 대사는 "남북 간 대화는 물론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에 대해서도 지지한다"는 낙관적인 입장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윤영관 서울대 교수=최근 수년간 미국이 진행한 핵관련 외교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이 경제적 협력을 받는 대신 핵무기 개발을 포기할 가능성에 대해 낙관적인가.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미국 정부가 북한보다 이라크에 집중해 왔던 게 사실이다.

이라크를 침공했고 여전히 테러 근절에 역점을 두고 있다.

한반도 문제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때문에 북핵 문제는 진전이 없진 않으나 아직 해결되지 못한 이슈들이 남아 있다.

북한의 기존 핵무기 처리,핵 물질 및 기술 수출,두 가지 사안의 모니터링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리처드 홀브룩 전 유엔 주재 미 대사=부시 대통령은 2003년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했다.

김정일 정권을 증오했으며 북한의 정권교체를 바랐다.

그러자 북한은 지난해 10월 핵실험으로 맞섰다.

핵실험이 성공적이지는 못했으나 부시 행정부는 기존 북핵 정책을 바꿨다.

다시 협상에 진지하게 나선 것은 잘 된 일이다.

1994년 북ㆍ미 간 제네바 협정을 출발점으로 삼고,중국과 협조해 북핵 정책을 구사했다면 더 바람직했을 것이다.

중국은 동북아시아에서 또 다른 핵보유국이 나타나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한국은 50년간 평화협정 없이도 평화로웠다.

평화협정은 체결될 수도 있고,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평화협정을 맺는다고 전쟁이 다시 발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 못한다.

평화협정 논의를 시작하길 바란다면 지지하는 입장이다.

◆윤 교수=최근 평양에서 열렸던 '2007 남북 정상회담'을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 정부에 정책적으로 권고하고 싶은 게 있다면.

◆홀브룩 전 대사=간단하게 보면 된다.

정치ㆍ경제ㆍ군사적인 면,무엇보다 가치체계 면 등에서 한국은 북한보다 월등하다.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과 아들인 김정일 위원장의 통제하에 '거대한 감옥'에 살고 있다.

그래서 남북 간 상호교류를 통해 남한의 진실이 북한에 침투되도록 해야 한다.

남북한이 대화를 열어야 하는데 찬성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이 올림픽에 참가했듯이 북한 사람들이 남한에 올 수 있다면 남한 사람들이 승용차를 소유하고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 실상을 보게 될 것이고,그 실상을 북한 내에 전파하게 될 것이다.

동유럽 공산국가들도 결국 그런 식으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후쿠야마 교수=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북한은 개방에 따른 사상적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특구 등으로 경제적 교류를 제한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이 중국식이나 동독식 개방정책을 펴는 것도 아니다.

정상회담의 구체적인 후속조치 이행이 중요하다.

◆홀브룩 전 대사=북한정권이 외부사상 유입 등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남북한은 장기적으로 통일될 전망이다.

다만 향후 10년 내 통일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서독과 동독이 통일됐을 당시 남북한도 10년 이내에 통일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너무 낙관했다.

남북한이 통일을 이루더라도 걱정했던 것보다 더 많은 통일 비용이 들 것이다.

막대한 통일 비용은 까다로운 문제다.

◆윤 교수=남북한이 정상적인 국가로 거듭나고,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구축되는 게 한국인들의 염원이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ㆍ미가 어떻게 협력해야 하나.

◆홀브룩 전 대사=분단 상황이 비정상적인 상태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남한은 정상적으로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경제를 발전시켰다.

반면 휴전선 너머 북한은 다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대규모 사상자를 내면서까지 한국을 수호했다는 점 등을 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남한은 김일성 정권에 넘어갔을 것이다.

일부 한국 젊은이들은 수정주의 역사학자인 브루스 커밍스에 영향받아 남한이 한국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황당한 역사 인식이다.

자신들의 역사를 제대로 모르는데 어떻게 미래를 알 수 있겠나.

미국이 한반도에서 모두 좋은 행동만 한 것은 아니다.

미군의 노근리 학살은 큰 실수였다.

그럼에도 미국이 한국에 등을 돌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후쿠야마 교수=동의한다.

북한 주민들의 평균 신장이 영양 부족으로 인해 최근 30년간 줄었다는 통계는 충격적이다.

아마 세계에서 유일한 현상일 것이다.

한국인들은 이런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본다.

◆윤 교수=6자회담에서는 새로운 동아시아 안보협력 체계를 만들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는가.

◆후쿠야마 교수=아시아의 국제적인 구조를 재고해야 할 때다.

중국이 국제적으로,또 아시아의 질서 속에서 지분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를 모델 삼아 6자회담을 그런 기구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홀브룩 전 대사=부시 정권 6년 동안 유일하게 성공한 정책은 한국에서 나왔다.

바로 6자 회담이다.

아시아는 두 가지 요인으로 미국인들의 의식에 깊이 들어와 있다.

하나는 중국 인도 한국의 경제적인 부상이고,또 하나는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계의 부상이다.

미국이 한국이나 아시아를 잊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어느 나라가 아시아를 잊고 살아도 될 만큼 운이 좋겠는가.

◆윤 교수=미국의 향후 외교정책의 방향을 전망한다면.

◆후쿠야마 교수=부시 독트린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방지를 명분으로 내세운 예방용 전쟁,즉 선점, 미국의 일방적 정책 전개를 위한 국제기구에 대한 적대감,민주주의의 증진 등 세가지 특징이 있었다.

이 중 민주주의 증진은 대량살상무기와 테러리즘 등 이라크 침공 명분을 입증하기가 어려워지자 이후 중시되기 시작했다.

부시 행정부의 이런 초기 아젠다들이 최근 3년 동안 약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홀브룩 전 대사=미국은 2차대전 이후 초강대국이 됐으나 이제는 그 리더십이 위기에 처해있다.

미국의 차기 정부는 그 리더십을 복원해야 한다.

정리=김홍열/정지영/김동윤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