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東根 < 명지대 사회과학대학장·경제학 >

세상을 보는 눈과 흐름을 읽는 능력이 기업의 명운(命運)을 가른다.

할리 데이비슨은 미국 오토바이 시장에서 1970년대까지 75%의 점유율을 차지했으나 80년대 들어와 40%로 급락하면서 부도위기에 몰렸다.

이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 할리 데이비슨을 구한 사람은 티어링크였다.

그는 오토바이 고객은 '감성적 소비자'라는 사실을 정확히 읽어냈다.

동호회 활동을 통해 제품에 대한 토론과 제안을 유도했고 이를 즉시 반영했다.

오토바이를 파는 기업에서 '할리 문화'를 파는 기업으로 변신한 것이 재기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할리 데이비슨은 오토바이 제조업체가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을 창조하는 기업"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명운을 가르는 것은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일 수도 있다.

최근 범여권의 한 대통령 후보는 "20%만 잘살고 80%는 버려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정글자본주의를 배격한다"고 했다.

돈 있고 땅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정글 법칙을 배척한다는 것이다.

범여권의 또 다른 후보는,야권 후보의 정책을 '특권층만을 위한 가짜 경제'로 폄하하고 자신의 정책을 '사람중심의 진짜경제'라고 주장했다.

평상시에는 그렇게도 이성적인 유권자도 정치계절만 되면 '감성적 소비자'로 변한다.

이 점을 대선후보들이 놓칠 리 없다.

2등이 존재하지 않는 정치 세계에서 언사는 상대방을 압도하고 '사적(私的) 정치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정치의 '1차적 수단'이다.

따라서 자신의 주장을 최대한 극적으로 표현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부 대선 후보들의 행태는 숨 막히게 한다.

논리적 설득과 깊은 성찰 없이,감성적인 정치시장에서 정치기업을 살려내려는 CEO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경제관과 정책사고가 보편적 가치와 세계적 트렌드에 부합하는지도 우려된다.

참여정부의 경제관이 '정글자본주의'였기 때문에,역설적으로 그토록 보호하고자 했던 '서민층'의 생활이 어려워진 것이다.

참여정부 들어 분배의 악화는 지니계수 또는 소득분위자료 등을 통해 '객관적으로' 포착된다.

양극화도 따지고 보면 중산층이 몰락하고 신(新)빈곤층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러면 20 대 80의 정글법칙은 맞는가? 단적으로 앞집의 박서방이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뒷집의 김서방이 가난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돈'은 남의 필요를 충족시켜 준 '한계기여'에 대한 보상인 것이다.

따라서 어느 사람이 돈을 벌었다 해서 다른 사람의 돈 벌 기회를 뺏어가는 것이 아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많아야 그만큼 경제규모가 커지고 다른 사람들도 돈을 벌 기회가 '새로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누어 먹을 떡(경제성장)의 크기가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떡을 크게 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경제는 '기회의 보고'(寶庫)이다.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조서방을 일으켜 세워준 것은 바로 시장이 제공한 '기회'였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정글자본주의' '재벌 대 서민의 한판승부' 운운하는 '선진국' 정치지도자를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혹자는 8 대 2의 사회를 막기 위해 정글자본주의를 이야기한 것으로 말할 수도 있다.

진정 8 대 2 사회를 막으려면,8 대 2의 '대립구도'를 설정하지 말아야 한다.

'골고루'를 의미하는 균형은 목표가 아닌 결과의 개념이다.

대립구도는 질시의 정치(politics of envy)를 부를 뿐이다.

'증오'를 제어하지 못하면 가난은 청구권력으로 변하게 되고,국가에의 의존만 깊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한국의 정치현실을 자학할 이유는 없다.

2만달러 소득을 목전에 둔 나라,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를 지향하는 나라이지 않은가? 전략 이전에 비전을,전술 이전에 철학을,기술 이전에 진정성을 갖춘 후보가 요구된다.

정치는 기업경영 그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