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2000포인트를 회복했던 코스피 지수를 단숨에 끌어내린 원인 중 하나는 美 투자은행인 메릴린치가 예상보다 부진한 실적을 발표할 것이란 소식이었다.

실제로 메릴린치는 우려했던 것보다 더 나쁜 실적을 공개했지만, 뉴욕 증시는 금리인하 기대감에 낙폭을 축소하며 선방하는 모습을 보였고 국내 증시도 25일 하루만에 다시 반등하고 있다.

시장의 관심이 대부분 중국에 쏠려있기는 하지만, 주택시장 침체에 따른 서브프라임 사태가 아직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어서 美 경기 위축에 대한 우려 등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美 금융섹터의 실적 불안이 주식시장의 급락을 불러올만한 대형 악재는 아니라면서 지나치게 경계심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만 문제는 주택시장의 위축이 계속될 경우 소비 및 경기 둔화로 연결될 수 있는데다 서브프라임 외 모기지 대출 비중이 높은 주요 은행들의 실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S&P500 지수에 포함돼 있는 美 금융주들 중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60~70%가 3분기 실적을 공개했다.

SK증권에 따르면 은행업종의 실적은 전년 대비 13.6% 하락하고 있고, 투자은행들의 실적은 2% 가량 낮아진 상황이다.

다른 업종들은 실적 전망이 높아지면서 안정을 찾고 있지만 금융권의 실적 부진이 가시화되고 있어 시장 컨센서스도 한층 더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메릴린치의 실적 부진은 그 동안 상업은행보다는 상대적으로 부실 규모가 적을 것으로 기대됐던 투자은행들의 실적 불확실성을 확대시키고 있어 투자심리에 부정적이란 분석이다.

이런 영향으로 뉴욕 주식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주요 은행주들의 주가는 몇차례 급락을 거친 후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SK증권의 김영준 연구원은 "금융주들의 실적 부진이 서브프라임 부실이 구체화되는 단계에서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단계로 확산되는 것과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삼성증권도 서브프라임 사태에 따른 신용 위기는 이미 시장에서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며 기업들의 실적 발표는 이러한 우려의 '끝물'일 뿐 이라고 주장했다.

하나대투증권의 서동필 연구원은 "현재 발표되고 있는 실적은 크게 낮아지긴 했지만 예상치에 부합하는 수준들로 평가되고 있다"면서 "12월 발표될 실적은 개선될 것이라는 게 시장의 컨센서스"라고 말했다.

메릴린치의 실적이 다른 투자은행들에 비해 두드러지게 약세를 기록하긴 했지만, 아시아 시장까지 조정으로 이끌 악재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실적이 추가로 악화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투자은행들의 실적 부진이 시장을 궁지에 몰아넣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

다만 문제는 미국의 주택 경기가 회복의 기미를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IT주들이 실적 호조를 배경으로 주식시장에 힘을 불어넣고 있지만, 주요 주택관련 지표들은 바닥권을 맴돌면서 이를 상쇄시키고 있다.

24일 발표된 9월 중고주택판매호수에 이어 25일과 26일에도 신규주택판매호수와 美 최대 모기지 업체 컨트리와이드의 실적 공개가 예정돼 있어 주택경기에 대한 우려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업계의 한 전문가는 "주택판매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가격도 계속 떨어지는 침체기가 계속될 경우 프라임 시장에도 악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브프라임뿐 아니라 프라임 시장에서도 집값이 고공행진하던 당시 제공된 모기지론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어서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이 전문가는 "IT주가 선방하고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주택경기 악화가 지속될 경우 미국 경제나 금융권이 받게 될 영향은 클 수 있다"면서 "이 경우 국내 증시 역시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닷컴 강지연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