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기간산업에 대한 외국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ㆍ합병(M&A) 시도를 막기 위한 '한국판 엑슨-플로리오법'이 도입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삼성전자 포스코 등 국내 주요 기업에 대한 외국인의 적대적 M&A 시도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

국내 한 일간신문은 지난 4일 이렇게 보도했다.

외국인 투자가 위축될 것을 우려해 M&A 방어책 도입에 반대 입장을 고수해오던 정부가 마침내 제도 도입을 위해 외국인투자촉진법 시행령을 개정키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달랐다.

산자부에 문의한 결과 바뀐 내용은 국가안보 관련 내용을 시행령에서 4가지로 구체화하고 외국인 투자가 국가안보에 위해를 끼치는지 심의해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일 뿐이었다.

산자부 관계자는 "일부 국회의원들이 M&A 방어책을 도입하라고 하도 요구하길래 그 주장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반영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시늉만 냈다는 얘기다.

기사 내용이 사실과 전혀 달랐지만 산자부는 부인 자료를 전혀 내지 않았다.

평소 조금만 불리해도 적극적인 해명에 나서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지난달 18일 시행령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을 때 A국회의원 보좌관은 "(A의원의 적극적인 의정활동 덕분에) 정부가 M&A 방어책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오기까지 했다.

결국 국회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오해해주길 바라는 산자부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무대응은 2주 뒤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2일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외국인 투자자의 M&A를 제한하는 방안을 정부와 협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기사에는 국내 신문이 보도한, 사실과 다른 내용도 인용됐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미국 출장 중 FT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전자 등) 전자산업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산업'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명해야 했다.

하지만 FT는 권 부총리의 발언을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한국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FT는 무대응으로 일관한 산자부의 '직무유기' 탓에 독자들에게 한국을 '반외자정서가 심한 나라'로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정재형 경제부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