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에너지가 은하수와 평행으로 흐른다는 켈트 족 전설을 간직한 가톨릭 순례 길.프랑스 남서부의 중세 도시 생장피드포르에서 시작해 스페인 국경을 넘는 피레네 산맥을 따라 서쪽으로 600㎞를 달려야 나타나는 산티아고까지의 긴 여정.

예수의 제자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 있다는 최종 목적지를 향해 한 남자가 배낭을 꾸렸다.

동행자 중 15%만 성공하고 상당수가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한다는 그 낯선 땅을 걷기 위해.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하페 케르켈링 지음,박민숙 옮김,은행나무)는 독일 최고의 엔터테이너가 쓴 42일간의 여행기다.

잘 나가는 코미디언으로 정신 없이 살다가 병마가 덮치자 과감히 일상을 탈출한 '대장정'을 담담히 그렸다.

안개비에 젖어 삶과 죽음의 문제를 생각하는 고독한 나그네,눈 덮인 산봉우리를 헉헉 대며 오르면서 '잃어버린 자기'를 되찾으려는 이방인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모든 걱정과 잡념을 내려놓고 나만의 호흡을 느끼며 온전히 걸음에 집중한다.

순간 주위의 사물들과 하나가 되고 몸과 마음이 텅 비는 기쁨이라니….이 길의 힘을 믿는다면 가슴 속에 빛나는 보석 하나를 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게다.'

바람 부는 초원과 들판,물결치는 옥수수밭을 구도자처럼 걷던 저자는 목표의 중간 지점을 조금 지난 아스토르가로 향한 포도밭에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완전한 진공 상태의 공허를 채워주는 완벽한 충만감과 자유를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신과의 인격적 만남'이자 '하느님의 현존 체험'을 통해 그는 거듭났다.

울화를 다스리는 에콰도르 인디언 의술사,달라이 라마에 정통한 리버풀 여인 등 현자들도 만나게 해준다.

독일에서 2년 연속 베스트 셀러에 올랐으며 지금까지 200만부 넘게 팔렸다.

368쪽,1만원.

김홍조 편집위원 kiru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