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공은 영원히 푸르고,대지는 장구히 변치 않으며 봄에 꽃을 피운다.

그러하나 사람아,그대는 대체 얼마나 살려나?'(구스타프 말러의 곡으로 유명한 중국 이백의 시)

인간이 사라진 이후의 지구를 다룬 과학 논픽션 '인간 없는 세상'(앨런 와이즈먼 지음,이한중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은 이 시를 인용하면서 첫 페이지를 시작한다.

저자는 미국 애리조나대학 국제저널리즘 교수이자 저널리스트.그는 과학적인 분석과 부드러운 상상력을 씨ㆍ날줄로 엮어가며 놀라운 지적 탐험을 펼쳐보인다.

그의 말처럼 '우리 모두가 느닷없이 사라져 버린 뒤의 세상'은 어떨까.

당장 이틀 후에 뉴욕의 지하철역과 통로에 물이 가득 들어차고 이는 곧 지반 균열로 이어진다.

일주일 후에는 원자로 노심에 냉각수를 순환시키는 디젤 발전기의 비상연료 공급이 끊어지고 3년 후에는 얼어터진 배관들의 수축ㆍ팽창으로 건물이 손상된다.

도시의 따뜻한 환경에 살던 바퀴벌레들은 겨울을 한두 번 거치는 동안 멸종된다.

100년 후에는 코끼리의 개체수가 스무 배로 늘고 고양이떼에 밀려 너구리,족제비 등은 줄어든다.

1000년 후,영불해협의 해저터널을 제외한 모든 인공 구조물이 없어지고 3만5000년 후에는 굴뚝산업 시대에 침전된 납이 토양에서 전부 씻겨나간다.

수십~수백만 년 후에는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미생물이 진화한다.

45억년 후 태양의 팽창으로 지구가 뜨거워지기 시작하고 50억년 후에는 죽어가는 태양이 내행성들을 다 감싸면서 지구도 불타버린다.

다만 우리가 남긴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전파만 외계를 떠돌아다닌다.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에 관한 내용도 나온다.

반세기 동안 야생종들의 천국이 된 이 '초록 띠'를 국제적인 평화공원으로 만들어 세계인이 가장 아끼는 유산으로 남기자는 것.

이 책은 인간에 의해 상처 입은 지구의 자기 치유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 시선은 '돌아온 탕아'처럼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와 자연의 관계를 역설적인 통찰로 비춘 역작.영화로도 나올 예정이다.

428쪽,2만3000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