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컬렉션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서울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장(SETEC).지난 24일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황재복씨가 '러브레터'를 테마로 선보인 단아하고 로맨틱한 백색의 웨딩드레스들이 무대를 가득 채웠다.

이날 쇼에 등장한 40여벌의 웨딩드레스는 절제된 비딩ㆍ 코사지 장식과 우아한 레이스 장식으로 모델들의 아름다운 실루엣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1990년 패션계에 데뷔한 이래 18년째 웨딩드레스 디자인 한길만을 걸어온 황씨는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한다는 건 축복받은 직업"이라고 말했다.

일생 중 단 한번,가장 행복한 날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옷을 만든다는 데서 항상 일에 대한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황씨의 웨딩드레스를 '한송이의 카라꽃'으로 묘사한다.

화려하면서 요란한 디자인보다는 심플한 라인에 절제된 장식이 깨끗하고 순수한 신부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는 '황재복 스타일'의 웨딩드레스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 분야의 1인자인 만큼 그의 드레스는 보통 맞춤 드레스 한벌이 700만원,렌털하는 데만도 400만원을 받을 정도로 웨딩업계에선 고가에 속한다.

노무현 대통령,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유명인사의 딸이나 탤런트 한가인 등 연예인이 입었던 드레스로도 유명하다.

황씨의 대학 전공은 패션디자인이 아닌 신문방송학과 영문학이지만 이화여대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 디자인 대학원을 다니며 웨딩드레스 디자이너의 길에 들어섰다.

물론 대학 시절 옷감을 사다 직접 만들어 입고 다녔을 정도로 디자이너로서의 '끼'는 그때부터 보여줬다.

167㎝의 훤칠한 키에 직접 만든 옷을 입고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황씨에게 쏠렸다고.

그는 유복한 가정환경 덕택에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웨딩드레스 숍을 차릴 수 있었다. 또한 1990년 대한복식협회(현 KFDA)가 주최한 서울 패션 페스티벌을 통해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로서 패션계에 황재복이란 이름을 알렸다.

화려한 비딩과 볼륨이 과장된 디자인이 주류를 이루던 1990년대 당시의 드레스와 달리 차분하고 절제된 스타일의 웨딩드레스를 선보여 한눈에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심플한 디자인의 드레스가 요즘은 트렌드로 정착됐지만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파격적인 시도였다.

그는 "신부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줄 수 있는 드레스는 신부가 갖고 있는 몸매의 단점을 완벽하게 커버할 수 있는 디자인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드레스에서 몸매의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해 주는 결정적인 역할은 웨딩드레스 안의 속옷이 완성한다고 덧붙였다.

드레스의 볼륨을 부풀리기 위해 속옷을 사용하기보다 적절히 조절해 신부의 체형을 돋보일 수 있도록 하는 데 이용해야 한다는 것.

황씨는 서울,미국,중국 등 여러 곳을 오가며 지금까지 선보인 수많은 쇼 가운데 1991년 옛 소련 시절 '레닌그라드 백야 축제'에 초청받아 열었던 패션쇼를 가장 가슴 뭉클했던 순간으로 기억했다.

소련 방문이 엄격히 제한돼 있던 시절 도우미 없이 혼자 30벌의 드레스들을 챙겨 비행기를 타고 힘들게 소련땅을 밟았다.

쇼를 하기도 전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는데 쇼가 시작된 순간 무대 앞을 꽉 채운 소련 사람들의 열정과 뛰어난 무대 연출 감각에 벅찬 감동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황씨는 1997년 제1회 서울컬렉션에서 선보였던 웨딩드레스에 대단한 애착을 갖고 있다.

인간문화재가 직접 직조해준 모시로 만든 한복 같은 느낌의 웨딩드레스로 그는 "투명하면서도 깊고 푸른 빛을 내는 모시라는 한국적 소재와 웨딩드레스라는 서양적 디자인이 절묘한 조합을 이뤄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1년에 평균 여섯 번의 컬렉션을 진행한다.

특히 서울컬렉션처럼 앞으로의 트렌드를 소개하는 쇼인 경우에는 더욱 공을 들인다고.그는 "실력 있는 디자이너라면 세계적 트렌드의 경향을 살펴 작품들을 내놓기보다 디자이너의 마음 가는 대로 디자인한 게 자연스럽게 트렌드로 흘러갈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했다.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디자인이 그 시즌의 트렌드로 전파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황씨는 나이를 밝히는 걸 매우 꺼렸다.

디자이너는 자신의 고객들에게 늘 신비로움을 주도록 해야 한다는 철학이 있기 때문.그의 고객 평균 연령대는 23~33세.그는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을 늘 고객의 정신 연령대에 맞춰 살고 있다"고 했다.

글=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

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