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과 의사는 영원한 갑이고 제약회사는 을인데 당국의 처벌만으로 시정이 되겠습니까?"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5일 제약회사의 리베이트를 대대적으로 적발해 발표한 것을 전후해 관련 업계가 뒤숭숭하다.

이번 기회에 선진국처럼 엄격한 윤리강령 등을 만들어 업계가 자정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반면 복제약의 높은 마진 구조를 조정하지 않고선 일과성 처벌에 그칠 것이란 회의론적 분석도 있다.

제약업계 리베이트 사슬의 구조적 요인과 대책을 시리즈로 싣는다.


"제약회사의 영업담당자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고 봐야 합니다." 국내 대형 제약사의 한 간부는 제약사들의 리베이트 지급 관행은 업계 내에선 '공연한 비밀'이라며 사법 당국이나 공정위가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처벌할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

공정위의 조사 대상이 된 17개 제약사가 "왜 우리만 조사하느냐"고 항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제약업계에서 리베이트란 제약회사가 병ㆍ의원 의사들에게 약을 써주는 대가로 건네는 각종 금품ㆍ향응을 뜻한다.

공정위의 이번 조사를 비롯해 지금까지 밝혀진 제약사의 리베이트는 그 규모가 상당할 뿐 아니라 수법도 지능화됐다.

국내 한 제약사는 인천 모병원의 이사장에게 의약품 납품가격의 20%에 해당하는 2억5000만원을 '랜딩비'(약품 채택 대가로 병원에 최초로 지급하는 돈)로 지급한 사실이 밝혀졌다.

또 다른 국내 제약사의 경우 모 종합병원의 건물을 신축하는데 수억원의 돈을 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들의 각종 학회ㆍ세미나에 대한 지원은 기본이다.

한 제약사 영업소장은 "랜딩비나 건물신축비 같은 고전적인 리베이트 지급에 대한 감시가 엄격해지자 일부 제약사들은 영업사원 명의의 신용카드를 의사에게 대여해 주거나,고액의 상품권이나 주유권을 제공하는 신종수법을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제약업계에 왜 이 같은 리베이트 관행이 만연해 있을까.

제약사 리베이트 조사를 담당한 유희상 공정위 경쟁제한규제개혁단장은 의약품이란 상품의 특수성을 1차 원인으로 지목했다.

유 단장은 "다른 소비재와 달리 의약품은 전문성이 강해 제품의 매출이 전적으로 처방을 내리는 의사의 선택에 좌지우지된다"며 "의사와 제약사 간의 이 같은 철저한 '갑을 관계' 때문에 리베이트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복제약(특허 만료된 오리지널 신약과 약효와 성분이 같은 카피약)에 대한 국내 제약사들의 높은 의존도도 리베이트를 부추기고 있다.

한 국내 제약사 임원은 "많게는 수십개의 제약사가 품질이 똑같은 복제약을 생산하다보니 결국 의사에게 누가 더 좋은 서비스(리베이트)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영업전쟁의 승패가 가려진다"고 말했다.

한 다국적제약사의 한국법인 관계자는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복제약의 보험약가를 따져보면 한국은 80% 수준이지만 스웨덴 미국 등은 15∼30%에 불과하다"며 "한국은 복제약의 마진폭이 이처럼 크기 때문에 매출액의 20%를 리베이트로 제공해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제약업계 내에서 복제약 시장은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으로 불린다.

문제는 제약업계의 리베이트 관행이 국내 제약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문옥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제약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연구개발(R&D) 투자에서 나오는데 국내 제약사들은 지금까지 리베이트를 통해 손쉬운 장사를 해 왔다"며 "국내 다른 산업에 비해 제약산업의 국제 경쟁력이 취약한 데는 리베이트 관행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